싯다르타 스피릿

by traveLife

힌두교 최대 성지인 바라나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4대 불교 성지가 몰려 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영화 <리틀 부다>를 매우 감명 깊게 봤기에 잘생긴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했던 싯다르타가 실제로 어떤 곳에서 고행을 했고 깨달음을 얻었는지 궁금하여 4대 성지를 모두 훑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늘 그렇듯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어서 (빠듯한 시간과 여의치 않은 교통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라나시에서 가까운 사르나트와 보드가야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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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4대 불교 성지 중 무려 3곳이 인도에 있고, 중국의 둔황 석굴사원 편에서 언급한 석굴사원의 원조도 바로 인도에 있다. 그럼에도 정작 인도의 불교 인구는 1%도 안 되는 아이러니... 아무튼 이 4대 성지를 시간순으로 나열하면 싯다르타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Lumbini),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gaya), 첫 설법을 펼친 사르나트(Sarnath),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Kushinagar) 순이다.


일반적으로는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나, 네팔에서는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가 네팔 영토 안에 있으니 실제 불교문화의 시초는 네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스페인의 한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불교문화 복합단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는데(관련 기사),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에 거대한 불상이 들어선다는 게 선뜻 상상이 가지 않는다. 평화 사상을 알리는 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못 가본 룸비니의 모습이 아쉬워 구글로 검색해보니 그곳에는 거대한 룸비니 정원이 있고,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5색 타르초가 펄럭이고 있었다. 초기 불교의 형태는 소승불교라고 생각했는데, 네팔은 의외로 티베트 불교권이었고, 알고 보니 싯다르타가 전파한 최초 이념도 많은 중생을 구제하는 데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대승불교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리틀 부다>에서 싯다르타는 왕자 시절, 마을로 행차를 나갔다가 처음으로 생로병사를 마주하고 충격을 받은 후 고행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거대한 나무 아래 앉아 수행하던 어느 날 보리(菩提, bodhi), 즉 깨달음을 얻는데 그 장소가 바로 부다가야에 있다.

싯다르타가 깨친 자리에는 '크게 깨달았다'라는 뜻의 마하보디(Mahabodhi) 대탑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실제 그가 금강좌(金剛座)를 하고 앉았던 보리수가 서 있다. 마하보디 대탑은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인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불교를 장려하기 위해 지었는데, 그 후 이슬람 세력의 진출과 불교의 쇠퇴로 힌두 양식과 결합되면서 힌두 사원의 탑문 형식인 고푸람(gopuram)으로 변형되었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내가 굳이 보드가야까지 온 또 다른 이유는 이 찬란한 불탑이 있는 성지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비하르 주에 있기 때문이었다. 성지와 가난한 마을이라니 이처럼 드라마틱한 매치가 또 어디 있을까. 과연 그곳의 분위기는 어떨까...


바라나시에서 늦은 오후에 출발하는 하루 1대뿐인 기차를 타고 보드가야로 가는 동안 나는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은 10대의 어린 부부들을 만났다. 만약 당신이 갓난 아이를 안고 가는 15세 엄마와 16세 아빠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한창 학교를 다닐 나이에 부모가 되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빠와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엄마라니... 우리에게는 당연한 교육이 저들에게는 사치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토록 비루한 곳이 정말 존재하고 있었구나. 나는 싯다르타가 왜 이곳에서 깨칠 수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는 사르나트로 이동하는데, 거기서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5명의 사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들이 싯다르타를 떠난 이유는 고행 중 마을 처녀가 준 우유죽을 먹는 걸 보고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다시 만난 싯다르타의 설법을 들은 그들은 최초의 제자가 되었고, 그 자리에 사슴이 돌아다녔다고 하여 녹야원(鹿野園)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그곳에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라 불리는 거대한 불탑 주위로 옛 절터가 남아 있으며 한쪽에는 고고학박물관도 있는데, 아주 어렸을 적 철 없을 때 다녀갔던 터라 부끄럽지만 한국절에 들러 비빔밥을 얻어먹고 푹 쉬다 온 기억밖에 없다.


젊었을 때 고행하고 깨친 후에는 설법을 전하다 고요하게 가신 줄 알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싯다르타는 죽기 전에 피를 쏟으며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쿠시나가르의 사라쌍수 아래 와불의 자세를 하고 남긴 마지막 법문이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었다. 세상의 모든 행위는 늘 변하여 한 가지 모습으로 정해져 있지 않으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을 상기시키는 유언이기도 하다. 오늘의 답은 오늘에 맞는 것이지 내일은 또 그때 오는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 그러니 머물지 말라...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싯다르타 스피릿, 참으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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