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도그마

by traveLife

바라나시(Varanasi)는 인도 같지 않은 곳이었다. 수량이 풍부한 강가(Ganga)를 따라 가트(ghat)라고 하는 계단길이 형성되어 있고, 그 주위로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식당과 쇼핑가가 늘어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가트에서 벗어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다시 완벽한 인도가 펼쳐진다. 지금까지 중 가장 복잡한 미로와도 같은 골목길을 돌고 돌다 보면 희한하게 숙소나 메인 가트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여행자들은 이것을 '바라나시 미스터리'라고 불렀다.

바라나시의 명물은 이 강가에 몰려 있다. 가트를 따라 걷다 보면 빨래하는 사람들과 목욕하는 사람들, 푸자를 올리는 공간, 그리고 화장터를 차례로 마주치게 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이런 오픈된 공간에서 시체를 태우는 것이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태운 시체의 잔재가 떠다니는 강물에 굳이 몸을 담그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죄가 사해진다 해도 나라면 차라리 용서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힌두교도들에게 바라나시는 최고의 성지였다. 비록 여기서 태어나지는 못했더라도 죽기 전에 한 번은 강가에 몸을 담그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하며, 죽어서는 이곳 화장터에서 태워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 힌두교적 무거움이 다시 한번 나를 짓눌러왔다.


여기서는 삶과 죽음과 도그마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인아 님이 팟캐스트 <손미나의 싹수다방>에 나와서 하신 말씀이다. 내가 인도에서 느꼈던 종교 그 이상의 고착된 뭔가를 표현할 만한 단어를 찾지 못했는데, 역시 광고계의 거성이신지라 딱 맞는 말을 바로 찾아주셨다. 바로 이데올로기보다 더 무거운 '도그마(dogma)'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다른 나라만큼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변화가 거의 없는 사회에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물론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런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장점이 더 많다. 일단은 인도인의 사기 수법이 진화하지 않으니 처음에 왔을 때는 당했다가도 그다음부턴 절대 당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그들의 한결같은 사기 수법이 측은해지기도 한다. 지식과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는 팽창하는데, 그 자리에 머무르며 자칫 퇴화된 것도 같은 그들을 보는 게 사실 속편하지만은 않다.


한번은 친해진 동네 사람을 따라 점성술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신이 넘치는 나라에서 신점이 아닌 별점을 본다는 게 궁금하기도 했고, 그해 워낙 탈이 많았기에 앞날을 조금 점쳐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동네 사람을 따라간 곳에는 탐욕스럽게 살찐 브라만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의자에 꽉 껴서 못 일어난 건지 아니면 거만함 때문인지 앉아서 인사를 받더니 근황을 말해보란다. 그러고는 스리나가르에서 겪었던 테러 얘기를 들려주자 카슈미르 분쟁 지역은 늘 그 모냥이라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미래를 예견하는 자가 종교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나라에 사는 다른 민족을 험담하다니, 이 얼마나 모순된 행동인가. 당신 같은 사람들은 사심이 없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단단해서 깨뜨릴 수 없는 도그마를 가지고 누구의 앞날을 점쳐줄 수 있을까.

저녁 7:30 푸자(Puja, 힌두교식 예배)가 열리는 메인 가트로 나갔다. 이곳에서만큼은 여행자보다 힌두교 신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브라만 청년들이 앉아서 명상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의식에 관련된 굿즈를 사거나 강물에 소원을 빌며 디아(dia, 촛불 바구니)를 띄웠다. 가트에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었고, 보트를 타고 강가로 나가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배는 힌두식으로 경건하지만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소리의 힘을 믿는 이 민족은 만트라도 잊지 않고 꾸준히 읊었다. 바라나시는 그렇게 그들의 도그마 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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