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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Aug 21. 2020

뉴욕 한 달, 그리고...

아메리카 기행 - 뉴욕 15

나이아가라 폭포를 다녀오던 날, 집주인의 부탁으로 1일 베이비시터를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한 달 동안 참 다이내믹하게도 살았던 것 같다.) 이틀 연속으로 밤 버스를 타는 일정이라 웬만하면 그냥 쉬고 싶었지만, 달리 맡길 데가 없다며 간곡하게 부탁하는 걸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딱 하루만 더 고생하자. 잠은 버스에서 충분히 자두면 돼...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아프리카도 울고 갈 미국의 열악한 장거리 버스 시스템을 미처 알지 못한 채.


그레이하운드(Greyhound) 버스는 듣던 대로 악명 높았다. 뒤에 이용했던 메가버스(Megabus)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의 고속버스는 예약을 해도 좌석 번호가 없다. 즉 선착순으로 자리를 맡을 수 있다는 얘기. 좌석 배정도 안 해 줄 거면서 굳이 예약 fee를 받는 건 또 무슨 심보인가. 거기다 춥고, 지저분하고, 등받이는 뒤로 넘어가지도 않는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의 고속버스 시스템이 이다지도 촌스러울 줄이야. 고속도로 ETC는 E-ZPass란 이름으로 일찌감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건만, 정작 버스 시설은 남미보다 못하다니. 일부러 개선을 안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전 국민이 차를 사는 그날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마냥.

중국 여신 탕웨이와 한국의 귀공자 현빈이 나오는 영화 <만추>에 보면 시작 부분에 허름한 장거리 버스 씬이 나온다. 버스회사는 다르지만 그레이하운드도 거의 저렇게 생겼다고 보면 된다. 영화의 톤을 시종일관 어둡게 한 것도 저 낡고 지저분한 버스의 상태를 감추기 위함이리라.


아무튼, 앞으로 남은 여정을 과연 저런 버스로 이동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도저히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비행기 편을 알아봤는데 버스 가격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어떤 구간은 비행기가 더 저렴한 기현상을 발견했다. 버스도 한 달 전에 예약할 경우 아무리 먼 거리여도 15$에 갈 수 있었고, 최고 싸게는 1.99$까지 가능했다. 그러니 일정만 정해지면 최대한 일찍 예약할수록 이득인 것이다. 어디 교통뿐이랴. 숙박 플랫폼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긴 했지만, 알아볼수록 선택의 폭은 무한대로 뻗어나갔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얼리버드 프로모션 때문에 뉴욕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은 다음 일정을 짜느라 꽤 바쁘게 보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도서관과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열리는 무료 강좌는 잊지 않고 참석했으며, 하루에 1번은 꼭 카페 탐방을 나갔고, 저녁 산책의 주무대는 브루클린 브리지였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백수였을 때의 루틴과 뉴욕에서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도 같다. 머리털 나고 미국은 처음이지만, 그럼에도 익숙한 문화가 많아서 그리 헤매지 않은 걸 보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나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미국의 콘텐츠를 흡수하며 자라왔는지도 모르겠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허드슨 야드에서 띵크커피를 테이크아웃하여 즐겨 찾던 하이라인 산책로에 올랐다. 그날따라 cafe con leche가 고급지게 느껴진 건 기분 탓일까. 첼시 마켓을 지나자 익숙한 팻말이 보인다.

하이라인이 내게 묻는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웃는다.

낯선 도시에서의 한 달이 스무스하게 흘러갔음에 감사하며.

떠날 때가 되어서 섭섭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일이 또한 설렌다.


p.s.

미국 도시 여행은 아직 한 달 반이나 남았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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