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 놓은 밤톨 같은 머리통은 맨질맨질 쓰다듬기도 좋고 참말 귀엽다. 물론 그마저도 요즘은 함부로 손댈 수 없지만 말이다. 갓 1학년이 된 꼬맹이들은 6학년 의젓한 형님에서 다시 철부지 꼬맹이로 돌아간다. 이상한 일이다. 이건 고 1도 마찬가지다. 중 3일 땐 각 잡고 온갖 똥폼 잡으며 휘젓고 다니더니 고 1이 되면 다시 철부지 어린애처럼 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그 참.
1990년. 중 1 담임이 되었다. 이전 근무지에서 남녀 합반은 맡아보았지만 남학생반은 처음이다. 긴장되고 걱정되긴 아이들이나 나나 같은 신세다. 하지만 쫄지 말 것. 나는 허파에 잔뜩 바람을 불어넣은 채 호기롭게 교실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잔뜩 긴장한 아이들은 일제히 내 눈치를 살피며 재빨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스캔한다. 시린 표정. 굳게 다문 입술. 안경너머로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단춧구멍 같은 눈.
해마다 3월이 되기 전 다짐, 또 다짐을 한다. 올해만은 기필코 일주일 동안 웃지 않으리라. 3월 한 달 군기(?)를 바싹 잡아야 일 년이 편할 수 있다는 선배 교사들의 말에 힘입어 나 또한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서 잠깐, 나의 첫인상은 대충 이렇다. 밝히는 것도 나의 몫, 민망함도 나의 몫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긴 하지만 꽤 또박또박한 발음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분명하고 단호한 말투다.
아이들은 나의 깡마른 얼굴, 두터운 안경, 뾰족 턱의 냉랭함에 인상이 더럽다고 느낀다. 그래서 입만 다물고 있어도 어느 정도 카리스마는 풍긴다. 한데 그놈의 웃음이 문제다. 엄근진 표정으로 들어간 지 5분도 채 안돼 실실 웃음을 쪼개거나, 잇몸이 보이는 순간 단춧구멍 같던 눈마저 사라진다. 그 순간 새 담임의 포스에 잔뜩 주눅 들어 있던 아이들의 표정도 누그러진다. 올해도 편하게 지내기는 물 건너갔다. 3월의 까까머리 중1은 귀여움과 장난기로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폭죽처럼 꽃망울을 터뜨리던 시기였다. 쪼꼬미가 결석을 했다. 워낙에 작고 깡마른 데다 피부마저 까무잡잡하니 귀여워서 쪼꼬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학생이다. 아이는 며칠 전에도 지각을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집으로 전화하니 학생 어머니가 아침에 시간 맞춰 등교했다고 한다. 그리곤
“또 시작인가 봐요.”라고 한다.
그날 오후 쪼꼬미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왔다. 쪼꼬미의 사연은 이렇다. 6살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꿈치 아래를 잘린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철부지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된 이후 걸핏하면 결석을 밥 먹는 듯이 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신감은 없어지고 거짓말도 늘어갔다. 아이의 슬픔과 좌절이 거듭될수록 엄마의 무릎도 꺾였다. 달래도 보고 타이르기도 하고 때론 회초리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와 어머니의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깊어져만 갔다.
거리를 배회하거나 만화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
오늘 쪼꼬미는 또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비슷한 경험조차 없는 초짜 교사는 그날 밤 여러 가지 생각을 거듭하다 정면 돌파를 결정했다.
다음 날. 엄마 손에 이끌려 등교한 쪼쪼미를 따로 불렀다.
“어떤 점이 제일 견디기 힘들어?”
처음엔 힐끗대며 쳐다보고, 그다음은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물어대며 결국 놀림감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이에게 정면 돌파로 승부를 걸겠다는 내 생각을 충분히 설명했고,
아이는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종례 시간에 교단 아래로 내려와 쪼꼬미의 손을 잡고 아이들의 코앞에 다가섰다. 그리고 쪼쪼미의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교통사고의 경위와 그 후 이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받은 이야기.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말했다. 그렇다고 동정하지는 말라고.
너희들과 똑같은 친구로 대해달라고 말했다. 진심이 통했는지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앞으로 염려 말라고. 그날 이후 쪼꼬미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는 철부지 중 1이 되었고 더 이상의 결석은 없었다.
신설학교의 도서관 업무를 맡아하던 때였다. 수업이 없는 빈 시간이면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참 책 정리를 하는데 누군가 노크를 한다. 낯선 청년이다.
“선생님, 저 쪼꼬밉니다.”
“뭐, 네가?”
28살 청년이 되어 14년 만에 내 앞에 나타난 그를 처음엔 못 알아볼 뻔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키는 그때보다 꽤 많이 자랐지만
여전히 말랐고 까무잡잡했다.
청년 쪼꼬미는 의젓했고 밝았고 진지하지만 잘 웃었다. 신체적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한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이제는 웬만한 일은 다 참고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멘털이 건강하다며 소리 내어 웃는다.
그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있고 전도사가 꿈이라 했다. 다음 달에 중국으로 떠나면 당분간 오기 힘들 것 같다고 말한다. 떠나기 전 꼭 한 번은 인사드리고 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누군가 전해주는 ‘교육청 스승 찾기 코너’를 통해 근무지를 알아냈다는 녀석이 마냥 고맙다.
중국으로 떠난 이후 다시 쪼꼬미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어디서든지 제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인생에 겪어야 할 시련의 양이 있다면 이미 그의 몫은 충분히 치렀으므로 남은 앞길이 평탄하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