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신이 내린 선물

by 도희

울산이 광역시가 되기 전이니 경상남도 교육청 소속일 때다. 워낙 무더기로 신규발령이나 전보가 있을 때라 나 같은 신참도 엄두를 내 보았다. A중학교는 그 해 12명의 교사 중 6명이 전보를 신청했다. 교감은 내신 서류에 도장을 찍어 주며 “0 선생 같은 풋내기가 울산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며 소원이나 들어주자 식으로 도장을 꾸우욱 눌러 주었다. 울산을 희망한 4명은 전원 발령이 났다. 물론 나도 포함되었다. 나는 당당히 울산 시민이 되었다. 면민에서 시민노릇 하기에 너무 빡세던 터라 그 후 A 중학교 교감이 손바닥에 장을 지졌는지를 알아볼 겨를은 없었다.


발령장을 들고 남구에 소재한 S중학교를 찾아갔다. 아직 첫 졸업생도 배출하지 않은 설립 3년 차 학교였다. 깨끗하고 세련된 건물에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의 공기라도 마시면 뇌섹녀가 될까 해서 자취방도 도서관 담벼락 붙은 곳에 얻었지만 뇌섹녀는 커녕 애주가 되었다. 도서관 아래쪽에 식당과 술집이 즐비한 걸 못본건 실로 우연이었다.


S중학교 역시 첫 학교와 마찬가지로 2학기 발령이라 과목과 학년 선택권은 없었다.

“0 선생님은 2학년 국어를 맡게 됩니다.”

교무부장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무덤덤하게 말했다.

“저, 저는 사회관 데요.”나는 당황하여 바보처럼 더듬대며 말했다. 내 옆의 과학 선생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나보다 경력이 4년이나 더 있는 남선생이다. 그 역시 과학책은 만져 보지도 못한 채 나와 같이 2학년 국어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이쯤 하면 2학년 국어는 망하자는 얘기다.


아! 대도시의 학년당 8 학급 규모의 큰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전 학교에선 영어로 고통받게 하더니 이번엔 국어로 목을 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세종대왕님과 좀 더 친분을 쌓아 둘 걸 그랬다. 다시 또 전쟁 같은 교재 연구의 시작이다. 나는 국어 전공이 아니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알게 되면 얕잡아 볼 게 뻔하다.


그나마 학창 시절 제일 좋아하고 잘했던 과목이 국어였다. 근데 왜 사회 선생이 됐냐고? 이게 다 형편없는

수학 점수 때문이다. 고 3 담임이 수학 선생님이셨다. 어떡하든 내 수학 실력을 조금이나마 향상시키고자 하는 선생님과 일 년 내내 숨바꼭질을 했다. 수학시간이면 덩치 큰 아이 뒤에서 납작 엎드린 자세로 숨죽이며 지냈다. 보충수업, 자율 학습 시간이면 선생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숨바꼭질에서 늘 이겼고 그 결과 국어를 좋아하는 사회 선생이 되었다.


어쨌든 그 해 나는 아이들보다 한 발 앞서 최선을 다해 시험공부하듯 교과서를 파고들었다. 관련 자료를 찾았고,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의 시집을 따로 준비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난 말발깨나 있는 선생. 쫌 하는 국어교사로 인식되었다. 한 학기가 다 끝날 무렵까지 들키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있었다.


어느 날 내 수업을 받는 학생 중 한 명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과외 제의다. 지금처럼 현직교사의 과외가 금지되던 시기다. 현직 교사 프리미엄에 위험수당으로 월 100만 원을 얘기한다. 그 당시 월급이 40만 원 정도니 엄청난 거액이다. 집이 학교 앞 아파트라 가깝고 무엇보다 그 학생과 나는 성이 같았다. 우리는 흔치 않은 성이다. 따져보진 않았지만 어쩌면 먼 20촌쯤 될지도 모른다. 학생 어머니는 친척이라고 하면 아무에게도 의심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잠깐 유혹에 흔들렸다. 그 돈이면 그토록 가지고 싶던 인켈 전축도 살 수 있다. 사진 자료가 엄청 풍부하고 설명이 자세한 세계사 대백과 세트도 살 수 있는 돈이다. 검은 옷 입은 삼지창을 든 귀여운 꼬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좋은 기회야. 일단 한 달만 해 봐.” 하지만 심지 굳은 나는 귀염둥이의 쏘삭거림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파트 한 채 정도면 모를까 평생 직업이 걸린 일인데 100만 원은 좀 약했다.

같은 학교에서 국어 기간제를 하다 그만두고 학원에 간 김 선생을 소개해 주고 100만 원 대신 만 원짜리 밥 한 그릇을 얻어먹었다.


5년 후 S 중에서 마지막 해를 보내던 5월. 스승의 날이 가까워 올 무렵. 전화 왔다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때다. 이놈의 인기 하곤.

“네, 전화 바꿨습니다. 누구신지?”

자신을 남 00이라 밝히는 그는 전근온 첫 해 2학년 국어를 배웠던 학생이다. 눈이 크고 똘똘한 학생이라 기억이 난다. 스승의 날도 다 돼가고 해서 생각난 김에 전화해 본다는 그가 살짝 뜬금없긴 해도 반가웠다.

“지금 대학생이지?” @@대 정치외교학과란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뭐, 나? 왜?”

그다음 말이 나를 한 대 후려쳤다.

“선생님이 국어 시간에 넌 말을 조리 있게 잘하니 다음에 정치인이나 외교관 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아! 나도 모르게 한 아이의 인생에 금을 그었다. 국어 선생이었다는 사실조차 깜빡 잊고 지내던 내게 교사가 내뱉는 말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었다. 다행히 그 학생은 선한 영향력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 가슴이 뜨금했다. 많은 아이들에게 선한 말보다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얼마나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하지만 말조심해야겠다는 왕주사를 꾹 찔러 주었던 남 00의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때는 망각이 신이 내린 선물 같았다.


대문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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