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박사장

by 도희

박사장의 사업 수단은 뛰어났다. 능수능란한 제품 설명에 이어 장. 단점과 가격 비교까지 세심하게 하는 그를 보노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의 말은 당장이라도 쓰던 제품을 버리고 그가 권하는 것으로 바꿔야 할 것처럼 묘하게 빠져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귀염성 있는 외모에 애교 섞인 말투 서글서글한 눈매도 판매 실적에 한몫했다. 평상시 내가 본 그는 늘 잠에 취한 듯 어리바리해 보였다. 그런데 본인의 사업과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졌다. 불러만 주세요. 무엇이든 물어보살. 그의 본캐와 부캐가 헷갈릴 정도였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그가 열일곱 되던 해 2월이었다. 고등학교 신입생 반 편성시험을 치르던 날. 임시담임이었던 나는 시험을 마치고 학생들과 함께 교과서를 배부하는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본관에서 다른 건물로 가기 위해서는 운동장의 우회도로를 한참 가야 했다. 열네 반이나 되는 줄은 좀체 줄어들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은 하품을 참아야 할 만큼 지루했다. 학생들 옆을 왔다 갔다 하며 질서 지도를 하던 중 전화 통화 소리가 들렸다.


“네, 형님 그쪽 사무실 건은 형님이 알아서 하시고......”

열일곱이 통화하는 내용치곤 범상치 않았다. 소리 나는 쪽을 힐끗 쳐다보니 한 학생이 뭔가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상대방과 통화를 마치자 마자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이번엔 반대쪽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아까와 다른 휴대전화였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어 녀석을 유심히 바라봤다.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새파랗게 어린놈이 폰을 두 개씩이나 갖고서 이상하고 수상하고 괴이쩍은 내용을 이야기하니 호기심이 동했다.

"누구냐. 너?"

그는 사업가였다. 학생이라 명의는 동업자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시내 중심가에 휴대폰 매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앞에 2호점을 내기 위한 계약 문제로 통화하던 중이었다.


3월이 되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그를 볼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그는 늘 피곤했고 잠에 취해 있었다. 억지로 깨우면 마지못해 일어나긴 했지만 비몽사몽이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면 언제 졸았냐 싶게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교내에서 박사장으로 통했다.


박사장은 키가 자그마하고 덩치도 왜소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떠도는 소문엔 학교 안팎의 주먹 쓰는 녀석들의 뒷배를 봐준다는 얘기도 있었다. 의문부호를 남겼지만 심증은 가도 물증은 없었다. 나중에 그의 담임으로부터 박 사장의 아버지가 이 도시에서 잘 나가는 뚜껑 열리는 나이트클럽의 사장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자식의 사업적 재능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았다. 그의 휴대폰 영업은 학교 안에서도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휴대폰에 관한 문의를 했다. 물론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요청이었다.

박사장의 사업은 2학년이 되면서 점점 번성했다. 휴대폰 매장은 3개로 늘어났고 여름방학동안 해수욕장에서 치킨을 팔았다. 동업하는 친구와 함께 하루에 수십 마리의 치킨을 팔아 짭짤한 수입을 얻고 있다고 자랑했다. 날 더러 아들과 함께 놀러 오라 했지만 가지 않았다. 사업 머리도 배포도 없어 보이는 아들이 공부는 때려치우고 치킨을 팔겠다고 나설까 겁이 나서였다. 항간에는 젊은 교사 보다 박사장의 수입이 많을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는 처세술도 좋았다. 공부만 안 한 달뿐이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나 다른 말썽도 없었다. 하지만 몇몇 교사에게 학생답지 않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학생답다는 게 뭘까.


지금도 교실에는 본인의 의지 없이 부모의 강요나 타성에 젖어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학생이 많다. 앞날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이 밤에는 게임. 학교에선 잠으로 보내다가 점심시간이면 벌떡 깨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그런 아이들 가운데서 일찍부터 자기 진로가 명확한 박사장이 내눈엔 오히려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업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기특했다. 박사장은 지금도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돈을 인생 목표로 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돈만 밝히는 어른들의 부도덕한 면은 부디 못본 척 하면 좋겠다. 버는 일도 쓰는 일에도 떳떳하고 당당한 멋있는 사업가가 되기를 바란다.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더 많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박수받아야 할 일이다.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중장비 학원에 다니며 꿈을 키우는 J가 있었다. 미용실 원장이 되고 싶다던 M과 졸업 전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은 물론 복어요리 자격증을 딴 L도 만났다. 교실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진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박사장, 김 기사, 이셰프의 다양한 꿈이 살아있는 곳이다. 그들의 꿈과 선택을 응원한다.


대문사진 네이버 블로그 SLS스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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