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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아트 평생 회원권을
놓쳐 버렸다.

by 도희

‘휴우’ 한숨 끝에 갈증이 났다. 3일째. 본인은 물론 부모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유 없이 결석이 5일 이상 계속되면 교육청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얼굴 한번 본 적 없으니 보고도 뭘 알아야하지. 영은 1학년때부터 결석을 밥 먹듯하던 애라 친한 친구가 없었다. 게다가 1, 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두 분은 전근 가고 없으니 학교를 옮겨 온 내게 아이의 사정을 파악할 만한 소식통이 없었다. 정보 경찰도 아니고 FBI도 못되니 어디서 아이의 행적을 수소문해야 할지 난감하네~난감하네~


영의 아버지와 통화했다. 12월부터 집을 나가 친구의 자취방에서 지낸다며 영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줬다. 그는 뭘 어떻게 잘 부탁한다는 건지 밑도 끝도 없이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곤 전화를 끊었다. 학교전화로 열 번도 넘게 영과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는 학교 번호를 알고 있는 듯했다. 개인 휴대폰으로 하니 드디어 받았다. 낯선 번호라 누군지 궁금했을까. 어르고 달래서 일단 얼굴이나 보자고 간청했다. 나올까.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나오겠지.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11시가 넘어서야 등교한 영의 얼굴은 학교생활기록부에 나와 있는 사진과는 달라 생경했다. 노란 머리, 뽀얀 얼굴, 긴 속눈썹, 빨간 입술에 매니큐어 칠한 손톱까지. 교복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녀를 학생으로 볼까 싶었다. 물론 교복도 수선가의 솜씨가 한몫하고 있었다.


영에게도 나름 딱한 사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또래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 많고 완고했다. 어머니는 영이 6학년 때 아버지와 재혼한 분이셨다. 위로 나이 차가 많은 언니, 오빠가 있지만 외지에 있으니 의지가 못 되는 듯했다. 가족사를 찬찬히 얘기하는 영은 의외로 상냥하고 붙임성 있게 말했다. 동그랗고 큰 눈에 심지어 웃는 것도 예뻤다.

집안 사정을 털어놓고 난 영은 대뜸 “저 자퇴할래요.”하고 툭 던지듯이 내뱉었다. 이게 무슨 경우지. 학교를 옮기는 곳마다 왜 나만 보면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건지. 내가 지들을 잡아먹기라고 하나. 그만두려면 나를 만나기 전 진작에 그만두었어야지. 일단 부모님과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영은 문제없다는 듯이 이미 부모님과 얘기 끝났으니 온 김에 자퇴서를 쓰고 가겠다 했다. 마치 다시 안 볼 사람인 것처럼.

영의 아버지는 자퇴는 어림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애를 책임지고 학교에 보내겠다는 말도 없었다. 자퇴는 없으니 네 능력껏 애를 학교 다니게 하고 졸업시키라는 뜻인가. 아무래도 영의 아버지는 내가 능력자임을 눈치챈 것 같았다. 말이 통하기로는 어머니가 나았다. 일단 집에 데리고 들어가라고 권했다. 함께 지내는 친구는 학교를 다니지 않아 생활이 규칙적이지 못했다. 영마저 학교 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은 집으로 들어가지도 자퇴도 하지 않았다. 3월 한 달 동안 절반은 결석, 나머지는 지각과 조퇴를 번갈아 하며 간을 보는 통에 스트레스받은 내 간만 쪼그라들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결석을 했다간 졸업을 못할 판이었다. 영의 아버지가 나를 시험에 들게 했으니 어떡하든 버텨야 했다.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 학업 중단 숙려제였다.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제도로 생명 연장처럼 학생이라는 신분의 연장술이라 볼 수도 있다. 숙려제가 받아들여지면 학교나 전문기관에서 제공하는 숙려제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숙려 기간 동안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는 심리·진로 상담이나 인성·진로캠프, 직업 체험 등이 있다. 영은 최대치인 7주로 신청을 하고 제과제빵 직업체험을 신청했다. 학원의 담당 교사와도 말다툼을 해 쫒겨날 뻔했다. 큰소리는 지가 치고고개는 내가 숙였다. 수 차례 통화 해가면서 숙려기간도 간신히 끝낼 수 있었다.


영은 미인정결석과 조퇴를 밥먹듯이 하며 심심풀이로 학교를 드나들었다. 덕분에 출석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로 가서 영이 몇 시에 왔다 몇 시에 갔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순식간에 왔다 사라지는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등교하면 무조건 교무실 내 자리에 들러 눈도장을 찍도록 했다. 내가 없는 경우엔 책상 위에 몇 시에 왔는지 메모를 남기도록 했다.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했다. 영에게 쏟는 에너지면 다른 학생 10명에게 관심을 더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손은 많이 가지만 말은 더럽게 안 듣는 나쁜 양 같으니라고.


10월 말. 영은 예쁘게 치장한 손톱을 내밀며 네일아트를 배운다고 했다.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니 내 일처럼 기뻤다. 영과 새끼손가락 걸고 복사까지 했다.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면 제일 먼저 내 손에 해 주기로.

2학기가 되자 졸업은 하고 싶은지 남은 결석일수에 대해 물었다. 아니 사실 욕심은 내가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영의 아버지에게 어마어마한 내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 비록 11시 등교, 13시 조퇴긴 했지만 어쨌든 출석은 하면서 정확하게 날짜를 계산해 가며 스릴 넘치는 날들을 보냈다.


2월이 되고 졸업이 가까워졌다. 영은 드디어 남은 날을 모두 결석해도 졸업할 수 있음을 알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졸업식 날은 오지 않을까 해서 기다렸지만 끝끝내 오지 않았다. 책상 위에 영의 앨범과 졸업장을 두고 씁쓸한 퇴근을 했다. 방학이라 며칠 쉬고 다른 일을 처리하러 학교에 가니 책상 위에 있던 영의 앨범과 졸업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상 위 여기저기 메모라도 있나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나는 영에게 네일아트 평생 회원권이나 보증서라도 받아 공증이라도 해 두지 못한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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