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나른한 시간이다.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무겁다고 징징대는 눈까풀을 달랠 겸 소파에 기대 낮잠을 자볼까 하던 참이었다. 달갑지 않았다. 어디 보자. 광고성 문자기만 해 봐. 툴툴대며 상단에 뜬 이름을 확인하자 잠이 확 깼다. 빈이다. 빈에게 장문의 편지가 왔다.
빈은 퇴직 전 근무했던 D고등학교 학생이었다. 3학년 담임을 맡았던 해. 우리 반 부반장이었다. 우리 반은 남학생 15명과 여학생 17명이었다. 숫자는 비슷했지만 여학생이 좀 더 적극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반장과 부반장 모두 여학생이었다. 반장이 명랑 쾌활한 눈치 백 단의 여우과에 속한다면 빈은 우직하고 묵묵하게 제 할 일만 하는 곰과에 속했다.
빈은 공부도 잘했지만 행동이나 말투가 예의 발랐다. 말수가 적고 신중한 반면 살갑게 구는 편은 아니었고 학급일에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부반장이지만 체육대회, 앨범 사진 촬영 등의 행사나 학급관리에는 거의 나서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이 참했지만 부반장의 역할로 본다면 좀 아쉬웠다. 반면 반장은 다부지고 리더십이 있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했다.
사월 초 점심시간. 빈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걸으면서 얘기하자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아래 아이들은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며 벚꽃보다 화사한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운동장 한 바퀴를 다 돌았지만 빈은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망설이던 그녀가 어렵사리 꺼낸 말에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저를 못마땅하게 여겨 부반장을 바꿔야겠다는 얘길 했단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다고. 정말이냐고 물었다.
근거 없는 소문의 출처는 아영(가명)이었다. 당황스럽다할 지 황당하다 해야 할지. 처음엔 기가 찼지만 곧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뒷골이 땅겼다. 그렇다고 ‘아영이가 너와 나 사이를 이간질한 거다. 삼자대면이라도 할까’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학생들에게 말할 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한번 삐끗해서 오해가 생기면 일 년 내내 갔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빈에게 근거 없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보다고 말하자 수긍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빈과 아영은 동네 친구였다. 빈이 누구 말을 믿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둘 사이가 예전 같을지, 선을 넘은 아영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학급 분위기나 나와의 관계도 고민되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다행히 빈은 아영에게 내색하지 않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잘 지냈다. 빈의 사려 깊은 행동이 고마웠다.
수업시간에 너스레를 떨어도 좀체 웃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빈도 그랬다. 다른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웃어도 그저 빙그레 미소 짓는 게 다였다. 빈을 비롯해 그림자처럼 조용한 아이들에게 나는 종종 ‘한 번만 웃어 주면 안 돼?’하고 사정했다. 수줍어하면서도 가끔 인심 쓰듯이 활짝 웃어 주는 햇살 같은 표정이 선물 같았다.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면 마치 대학에 입학이라도 한 듯 착각한다. 대부분 수시모집에 응하기 때문이다. 우리 반은 수능성적이 필요한 학생이 몇 명 없었다. 시골 장날 파장 분위기 같은 어수선함 속에서 빈은 묵묵히 공부했고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다. 교사가 되고 싶어 했던 그녀는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로 진학했다.
애정을 쏟은 데 비해 곁을 잘 주지 않던 그녀가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졸업 후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번쯤 찾아왔지만 빈은 찾지 않았다. 소식조차 전하지 않아 속으론 좀 섭섭했었다. 그런 빈이 4년 만에 장문의 카톡 편지를 보내왔으니 잠이 깰 수밖에.
4학년이 되어 모교로 교생 실습을 나온 빈이 소식을 전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한 달이지만 교사가 되어 느껴본 소감과 그간의 소식을 전했다. 교사의 꿈을 접고 교육 행정직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사려 깊은 그녀가 충분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일테니 응원하고 지지를 보낸다.
그녀가 내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교생으로 있으면서 표현해 주는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꼈고, 저도 늦었지만 그런 제자가 되고 싶어서 용기 내 표현해 봅니다
중략
존경하는 제 마지막 담임 선생님! 선생님 제자여서 행복했습니다. 그때 좀 더 애살있게 다가갔어야 하는데 후회가 돼요. 많이 힘들었던 고3 시절 옆에서 큰 힘이 되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 행복한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어요.
코끝이 시큰했다. 날 멀리한 게 아니었다. 그저 쑥스러워 표현하지 못했을 뿐. 미련한 내가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었다. 어쩌면 마음 한 귀퉁이에 아주 아주 조금 남아 있을지도 모를 그녀에 대한 서운함이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도전하는 청춘을 위하여 마음을 담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