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연가를 냈다. 병원 진료 예약으로 수업은 시간표를 바꿔 미리 해 두었다. 진료 시간이 낮 시간대라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병원 갈 차비를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J선생이었다. J선생은 부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2반 의 담임이다. 연가인 줄 몰랐다고. 학교에 잠깐만 나오면 안 되겠냐고 했다. 아니 꼭 나와야 한다고 사정했다.
무슨 일인지 대략 짐작은 갔다. 학교를 향해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수업 들어가는 반 학생들에게 학교를 그만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과 그만둔다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울 것 같았다. 이별에 서투른 나는 아직 헤어질 준비가 덜 된 것인지, 어색함을 피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나이 먹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단련하지 못해서였다. 아직도 걸핏하면 질끔거리는 울보니까.
교실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은 꽉 깨물고 눈에 힘도 빡 주고 걸었다. 아무래도 코끝이 시큰해 오는 게 수상했다. 울면 딸기코가 된다. 마지막 순간에 딸기코를 들킬 순 없는데.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속으로 뇌까렸지만 교실 문을 열자마자 눈물 콧물로 범벅이 돼 버렸다. 교실 바닥에 수 놓인 조명, 천장에 매달린 색색의 풍선.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아이들의 노랫소리. 다정하게 안아주며 인사말을 건네는 여학생들. 의연하고 담담하게 이별을 하리라 생각했던 마음과는 달리 한참을 말도 못하고 눈물만 쏟았다.
‘수고했상’아이들이 준 상이다. 위 선생님은 따뜻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는 수업을 선사하였기에 이상을 수여함.
여태껏 받은 어떤 상장보다 뜻깊었다. 웃음과 행복을 주는 수업이라니. 이보다 더한 칭찬이 있을까. 계속 눈물을 훔치는 내게 여학생들은 교실에 꾸며 둔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자며 팔짱을 꼈다. 사진 찍으며 웃고, 보고 싶을 거라는 말에 울고. 한 시간 내내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서투른 이별 인사로 마무리하고 나왔다.
교사로 수업하는 마지막 날. 1학년 여학생 반이었다. 1학년 수업은 여학생 네 개 반에 일주일에 한 시간씩이었다. 2학년은 선택과목으로 6개 반 학생이 섞여 있다 보니 수업받는 학생들끼리도 서먹한 경우가 많았다. 1학년 수업은 비록 한 시간씩이지만 다양한 수업활동으로 또 다른 재미가 있어 정이 많이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즐겁게 수업하고 나오리라 마음먹고 교실 문을 열었다. 어느 반에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들었을까. 교실 앞쪽을 비워 무대를 마련하고 이별이 아닌 퇴임 축하 파티를 해 주었다. 28송이의 꽃을 받았다. 색종이에 손 편지를 곱게 써서 카네이션으로 접은 꽃이다. 한 명 한 명 나와서 꽃을 건네며 안아주었다. 정답고 따뜻한 인사말도 건넸다. 또 눈물바다였다. 이별에는 연습이 필요 없었다.
그날 퇴근 후 카톡 문자와 동영상이 왔다.
1학년 7반 반장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어 작별 인사를 못했다며 저희끼리 노래를 부르고 동영상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다. 영상을 보면서 또 눈물이 질금질금 나왔다. 그 참 고장 난 수도꼭지도 아니고.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들도 많이 다녀갔다. 대학은 방학이 이르니 인사차 열 명 정도가 왔었다. 물론 내가 학교를 그만둔다는 사실은 모르고 왔다. 다음 날은 소식을 듣고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다녀갔다. 절반 이상은 다녀 간 것 같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시 볼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도치 않게 졸업생과도 인사를 하게 돼서 찾아와 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공식적으로 출근하는 마지막 날. 컴퓨터에 보관되었던 학습자료는 usb에 담아 동과 후배 교사에게 주었다. 1학년은 다섯 개 출판사, 2학년은 3개 출판사별 자료를 모두 정리해 두었다. PPT와 애니메이션 자료, 직접 만든 학습지와 수업 자료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직접 만든 학습자료와 사용하던 교구들도 나누어 주었다. 문제집은 학생들에게, 마이크는 제자 현에게. 사물함과 서랍, 책상 위가 깨끗이 비워지는 걸 보며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홀가분했다. 학교를 영영 떠난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다.
종업식을 마치고 방송으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감사패와 꽃바구니를 받았다. 학생부에서 마련한 돈이 열린 꽃바구니도 받았다. 방송실에서 교무실로 돌아오는 복도에 2학년 아이들 몇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편지지에, 또 어떤 아이들은 급하게 공책에 쓴 편지를 내밀었다. 한 여학생은 3학년때도 함께 수업하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평소 새침해서 잘 웃지도 않던 아이였다. 남학생 한 명은 수줍게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일명 노는 아이들 무리에 속해 공부와 담쌓고 지내던 자신이 내 덕분에 공부에 흥미를 가지고 꿈도 키우게 됐다며 고맙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물이 나올까 봐 괜스레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K 선생이 잠깐 복도로 나와보라고 했다. 함께 했던 모임의 선생님들이 교무실 밖 복도에 모여 있었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노랫말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인사말을 담은 롤링 페이퍼까지 준비해 주었다.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았다. 하도 많이 울어서 이제 눈물이 말라 버릴 때도 된 것 같은데 끊임없이 솟아나는 옹달샘처럼 솟구쳤다. 내가 뭐라고 다들 이렇게 까지 하나 싶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교직 생활동안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상처도 있었다. 추억의 서랍에 켜켜이 쌓여 있던 것들을 털어내 곱게 정리해 두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 감사한 일이다. 끝까지 학교 생활을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학생들 덕분이다. 나이 많은 교사라고 싫어하지 않고, 귀찮을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요구해도 재밌게 따라와 주었다.
동료교사와 학생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나를 아낌없이 격려해 주고 응원해 준 동료 선생님들에게 이 글로 나마 마음을 전한다. 얘들아 고마웠어.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동료 선생님과 함께 (좌) 학생부 선생님들이 준 돈 꽃 바구니(가운데) 선생님들이 써 준 롤링 페이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