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Oct 09. 2022

자취하는 아들에게 반찬을 얻어 왔다

 추석이라고 아홉 달 만에 아들이 온다는 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심한 어지럼증이 며칠 전부터 시작됐다. 예전부터 종종 나타나는 어지럼증은 한번 생길 때마다 최소 삼 주 정도는 약을 먹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 목요일 낮 내내 누워 있다가 아들 방을 청소하고 침대 시트를 갈았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꾀죄죄한 꼴로 맞았다.      


  아들이 추석 연휴에 집에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차를 가지고 오라 했었다. 김치랑 반찬 몇 가지, 그 외 필요한 것을 가지고 가려면 아무래도 기차는 힘들지 않겠냐며.

목요일 일찍 출발하겠다고 했던 아들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오느라 예상보다 늦게 출발했다.  그래서 차가 많이 밀려 밤 9시가 훨씬 넘어서야 도착했다.

 우리는 미리 주문해 놓은 생선회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들은 밥을 먹으며 “엄마, 무슨 김치 주실 거예요?”라고 물었다. 몸이 좋지 않아 아들에게  새 김치를 담가 놓지 못했다고 말하자 아들은 “괜찮아요. 어차피 집에서 밥도 잘 안 먹는걸요.”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다음 날 그러니까 추석 전날이다. 온 힘을 짜내다시피 하여 전 두어 가지와 나물 몇 가지를 준비했다. 주메뉴는 소고기로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로 저녁을 먹었다. 아들은 오랜만에 방아잎 넣은 된장찌개를 한 숟갈 떠먹더니 이제 진짜 엄마 밥을 먹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상도 말로 병아리 눈물만큼 남은 된장찌개를 다음 날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걸 어떻게  가지고 가냐며 다음 날 새로 끓여 주겠다고 하고, 남은 찌개를 주저하지 않고 싱크대에 쏟아부었다.     


                               방아잎 된장찌개


 추석날 아침, 아들이 늦잠을 잘 것이라 짐작하고 침대에서 뭉그적거렸다. 여전히 어지러워 몸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부산한 소리에 거실로 나가보니 아들이 짐을 꾸리고 있었다. 남편이 오후에 차가 많이 밀릴 것이란 뉴스를 보고 아들의 출발을 재촉하고 있었다. 목요일 밤 9시 반에 도착한 아들은 토요일, 그러니까 추석날 아침도 거른 채 급히 올라갔다. 할 일이 많아 꼭 올라가야 한다는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 몸이 너무 힘들어 집에 머문다 한들 제대로 챙겨 줄 수 없음에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음은 새 김치와 된장찌개를 줄 수 없어 가슴에 맷돌을 얹은 것 같았다.     



  며칠 전 전화 통화에서 아들 목소리에 삶의 고단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들은 힘들다는 말을 좀체 하지 않는다. 특히 복학한 뒤부터는 훌쩍 철이 들어 그저 ‘좀 피곤해요’ ‘바쁘게 지내요.’ 이 정도 표현이 전부이다.

그런 아들에게 몸에 이상이 생겨 당분간 병원을 다녀야 한다는 말을 들은 나는 짠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들에게 전화로 “엄마가 네 옆에 며칠 가 있을게”라고 했더니 극구 만류한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가 걱정할 정도로 아들은  4년 동안 너무 힘들고 바쁘게 살았다.  이번엔 대학원 공부, 논문 준비에 회사일, 새로 맡은 프로젝트 등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생겨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화근이 된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나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고 마음속으로 기어코 아들에게 가고야 말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바구니 한가득 장을 봐 와서 고단한 줄도 모르고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었다. 얼갈이배추김치, 파김치, 불고기며 잡채, 밑반찬 몇 가지와 추석에 챙겨주지 못한 된장찌개를 끓였다. 반찬 한 가지를 만들 때마다 남편을 기미 상궁처럼 대령시켜 간을 보게 하고 아빠의 정성을 보탰다. 된장찌개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라고 여기지만 아들은 특히 방아잎을 잔뜩 넣고 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이 살짝 도는 경상도식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그러나 서울, 경기도 지역에서는 좀체 방아잎을 먹지 않으니 엄마표 된장찌개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한사코 오지 말라던 아들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간다는 날이 바로 절친한 친구의 생일이었다. 광명역으로 마중 나온 아들과 점심을 먹으며 저녁엔 뭘 먹기로 했냐고 물었다. 자취하는 친구가 집밥이 먹고 싶다길래 집에서 음식 몇 가지를 해 놓고 오는 길이란다. 집에서 직접 친구의 생일상을 차려준다는 말에 한번 놀라고,  준비한 음식메뉴에 또 한 번 놀랐다. 한식은 재료 손질부터  완성된 요리가 되기까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들은 요리에 취미가 있어 대학 다닐 적부터 집에 다니러 오면 닭백숙, 감자탕 등 종종  별식을 만들어 주곤 했다.  몇 년 전엔 스테이크와 파스타, 감바스로 내 생일상을 근사하게 차려 준 적도 있었다. 자취방에 친구들을 불러 더러 음식을 해 준다고는 했지만, 이번엔 의외다. 몸이 안 좋다는 녀석이 친구 생일상이라니 표정 관리하기가 좀 어려웠다. 게다가 엄마, 아빠도 맛보시라고 좀 싸 왔다는 말에 빵 터졌다.

자취하는 아들에게 반찬을 얻어 가는 엄마. 황당하지 않은가.     

23살 아들이 차려준 엄마 생일상

 엄마는 빌빌대는 몸으로 평소보다  정성을 들여 아들을 위한 반찬을 만들고, 아들놈은 친구 생일이라고 제집에서 음식 만들어 놓고 친구 대접한다고 부모는 문전 박대하다니.

평소 같았으면 서운함을 가득 담아 잔소리를 한껏 퍼붓겠지만 오늘은 왠지 피식 웃음이 난다. 아들의 몸과 마음이 걱정했던 것보다 한결 괜찮음을 눈으로 확인한 탓이다.     


 오후 기차로 돌아와 아들이 만들어 준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아들은 소고기 찜과 잡채, 육전을 얼음팩과 함께 야무지게 싸주었다. 물론 친구에게는 밥과 미역국, 나물도 준비했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무슨 육전이 이렇게 두툼하냐’며 한입 베어 먹는데 웬걸 보기와는 달리 너무 부드럽다. 돈이 넉넉지 않으니 수입 소고기를 사서 칼질을 200번도 넘게 했다는 아들 녀석의 말이 생각나 아들을 위한 밥상에 그 정도의 정성까진 못 들인 나를 반성케 한다.    

     

아들이 차린 친구 생일상


  20대 중반을 넘긴 아들은 제법 정신적으로 성숙한 듯하다. 부모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요즘 젊은애들이 다 그렇죠. 뭐’하고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아들. 그에 비해 부모로서의 나는 덜 여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자식의 마음을 다 보듬어 주지 못한 것 같아 못내 미안하고 안쓰럽다.


 어디 자식의 마음뿐이랴. 가족, 부모 형제, 지인들에게 조금만 더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말 한마디에 귀 기울이면 될 것을,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밤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마음 한 자락 비워

그들이 머물 자리를 마련해 두자고.

이전 03화 올해도 그녀가 굴을 보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