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Nov 28. 2022

추억을 소환하는 옛날 과자 오란다

6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과자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는 주로 꿀**기, **조청, 꿀*구 같은 달고 바삭바삭한 식감을 가진 것들이다.

이런 류의 과자를 즐겨 찾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짜증 나거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땐 '바사삭’ 나는 소리에 일종의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렴한 입맛이라 해도 어쩔 수 없고,

유치한 버릇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하찮은 과자 나부랭이가 나에겐 때론 위안이 되니까.

저녁 식후 커피와 달콤한 과자는 나의 오늘이 무사히 잘 끝냈음을 알려 주는 종소리 같다.   

   


교사 시절 난 학생들에게 자주 사탕 인심을 썼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가끔 가족 여행 가서 사 온 과자나

제빵 학원에서 실습한 거라며 빵이나 구움과자를 불쑥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김영란 법’에 걸리니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해 본 적은 없다.

그럴 때는 빨리 먹어 치워 증거를 없애는 게 제일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진지하게 말한다.      


“나는 꿀**기, 이브*, *동산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사 오면 절~ 대 안된다이.

큰일 난데이~.”

“근데 누가 내 책상 위에 흘리고 가면 난 주워 먹을끼다.”     

아이들은 마주 보며 히죽히죽 웃는다.     


그 후로 가끔 수업을 다녀오면 책상 위에 누군가가 매점 자판기에서 뽑은 작은 과자 봉지나 사탕 몇 알을 흘려 놓고 가곤 했고, 인상착의를 설명해 주는 옆 자리 선생님과 나눠 먹으며 누가 흘리고 갔을까 추측해 보던 재미가 있었다.




6~7년 전 시 외곽지역의 학교에 근무할 때이다.

 학교 근처에 꽤 큰 규모의 5일장이 열렸는데, 가끔 정규 수업 끝나고 방과 후 수업 2차시가 있는 날이면,

기다리는 1시간 동안 재빨리 장을 보러 간다. (퇴근 시간 이후)

장이 파할 무렵에는 시골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온 채소를 떨이로 싸게 살 수가 있다. 할머니들은 집에 일찍 가실 수 있어 좋고, 나는 싸게 살 수 있어 서로 이익인 셈이다.

장날마다 파는 손두부와 묵도 빼놓을 수 없는 장보기 품목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남아 있는

동료 선생님들과 나눠 먹을 간식거리로 따끈한 호떡과 옛날 과자를 산다.     


옛날 과자를 저울에 달아 파는 곳이 서너 군데 있지만 그중 가장 종류도 많고 바삭함이 살아 있는 데다

“아이고, 이쁜 이모 왔는교?”라고 해주는 유머감각이 넘치는 젊은 사장님께로 간다.

과자, 비스킷, 미니쿠키, 사탕 등 수십 종류의 과자가 넘치도록 쌓여 있는 것만 봐도 흐뭇해진다.

나의 최애 과자 이브콘, 오란다, 꽈배기부터 담고 남편이 좋아하는 전병도 얹는다.  

    


어릴 적 ‘센베이’ 라고 부르던 전병은 정말 추억을 소환하는 과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외출 나가신 아버지께서 가끔 종이봉투에 담긴 전병을 사다 주셨다.

파래 맛과 생강 맛 전병은 사실 어린 내 입에 그다지 맛있진 않았지만 땅콩 맛 전병은 고소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가던 과자였다.


어쨌든 내 취향은 아니지만,

“ 당신 초등학교 코찔찔일 때 내는 중학생이었데이.” 라고 뻐기는 옛날 남자를 위해 부채꼴 모양의 파래 전병과 고소한 땅콩 전병, 알싸한 생강 맛이 나는 전병까지 골고루 담는다.


집으로 가져갈 봉지 하나, 학교에서 나눠 먹을 봉지 하나. 2만 원에 양손 가득 부자가 된 느낌이다.

참 소박한 과자 부자다.       

  




십여 년 전부터 시부모님 기일이나 친정 부모님 기일에 제사상에 올릴 과자를 만들고 있다.

주로 구움 과자나 미니 머핀, 양갱 등을 만든다. 물론 나는 제과 제빵에 관한 어떤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심지어 원데이 클래스에도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베이킹 재료 전문점에서 손쉽게 재료를 구입할 수 있고 레시피가 워낙 잘 나와 있으니 정말 똥 손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정성이라 생각하면 맛과 모양에서 좀 실패하더라도 위안이 된다.     


며칠 후면 시부모님 기일이라 이번엔 무엇을 만들어볼까 고민하다 요즘 5일장에 가도 찾아볼 수 없는 옛날 과자 생각이 나서 오란다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가끔 주문하는 베이킹 재료 쇼핑몰에 다행히 오란다 알알이를 판매한다.

2Kg과 4Kg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마침 4Kg짜리가 특가 판매를 해서 가격이 훨씬 저렴하길래 바로 주문했고 어제 오란다가 도착했다.      


포장된 박스를 여는 순간 허걱!

쌀 10Kg의 부피를 생각하고 양을 가늠하여 주문했던 오란다 4Kg는 어마 무시한 양이었다.


이걸 다 어떡하나. 오늘도 사서 고생이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히 만들어야지.


이제부터 오란다 만들기 시작이다.     

집에서 가장 큰 궁중팬을 꺼내 들고 레시피의 2배 분량씩 신속하게 계량을 한다.

계량컵과 저울을 이용하여 한번에 들어갈 알알이와 견과류를 비롯하여 설탕, 물엿, 올리고당의 양을 먼저 측정해 본다.

그렇게 하면 다음부터 일일이 계량하지 않아도 대충 눈짐작으로 가능하다.


 한 판이 완성되어 굳히기에 들어갔는데 예감이 좋지 않다.

 썰기는 남편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내 팔은 소중하니까.


불길한 예감일수록 잘 맞아떨어진다.

너무 달지 않게 하려고 물엿을 게 넣었더니 제대로 굳지 않아 반은 부서지고 남은 것도 모양이 얄궂다.

3번째 판에 가서야 제법 예쁜 모양이 나온다. 바삭바삭 '그래 이맛'이다.     


6판을 하고서야 겨우 절반을 끝냈다.

나머지는 다음을 기약하며 박스채 밀봉.

더 이상 만들다가는 오란다가 싫어질 것 같다.

싱크대에는 크고 작은 그릇이 몇 개나 올라 있고, 인덕션은 시커멓게 눌은 데다, 주방 바닥은 온통 부서진 알알이와 견과류 투성이다.      


‘하지만 이 뿌듯함은 뭐지?’     


썰면서 주워 먹고, 담다가 주워 먹고, 아까워서 주워 먹다 보니 배가 부풀어 오른다.


자. 이제 마무리~

가장 모양이 예쁜 놈으로 시부모님께 올릴 한 통을 담아 두고 봉지, 봉지 나누어 담는다.

시누이, 시동생네. 그리고 동네 이웃 여섯 집의 몫까지 분배해도 꽤 많은 양이 남아 흐뭇함에 저절로 광대뼈가 승천한다.

당분간 꿀꽈배기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추억은 오란다를 부르고 오란다는 내 살을 불린다.


오늘의 교훈

1. 역시 내가 만든 오란다는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란다는 사 먹는 편이 낫다.          


절대 궁금하지 않을 것 같지만 어디에나 호기심 천국에 있는 사람도 있을 법하살짝궁 레시피를 올려 .


                   < 오란다 만들기 >


재료 : 알알이 160~170g, 버터 또는 식용유 20g, 올리고당 25g, 조청(물엿) 75g, 설탕 40g, 견과류 80g,검정깨 2큰술(생략 가능)


     * 올리고당이나 물엿은 없으면 한 가지로만 하셔도 됩니다.


     * 단맛을 좋아하시면 설탕이나 물엿 양을 추가하시면 됩니다.


     * 견과류는 원하시는 만큼 넣으셔도 좋아요. 전 많이 넣는 게 좋더라구요.



1) 견과류를 마른 팬에 남편을 볶듯이 들들 볶는다.


2) 버터, 설탕, 물엿, 올리고당을 모두 넣고 중간 불에 끓인다.


3)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이고 알알이와 견과류를 넣고 7분 이상 실이 생길 때까지 뒤적인다. 설령 팔이 떨어져 나갈지라도 가느다란 실이 많이 보일 때까지 저어야 한다.


4) 사각틀에 소량의 식용유를 바른 다음  (그러지 않으면 사각틀과 오란다는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3)을 붓고 식힌다.


5) 오란다의 추억의 입김이 약간 남아 있을 때 자른다.






이전 05화 우리 동네 민여사는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