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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Dec 26. 2022

올해도 그녀가 굴을 보냈다.


'으아! 바람이 미친 것 같아.' 마당에 잠시 나갔다 오는 걸음이 평소보다 훨씬 빨라진다.

추운 날씨에는 따끈한 국이 제일이다. 오늘 저녁은 구수한 시래깃국을 끓일까? 비지찌개로 할까?

 고민해봤자 별 수 없는, 짜장면 아니면 짬뽕 같은 물음이다.


어제부터 시작한 한파가 내일이면 맹공격을 퍼붓는다 하니 혹한기 훈련이 따로 없다. 중부지방의 살벌한 추위와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추운 건 추운 거다. 아파트에선 문만 닫으면 별 지장 없이 겨울을 날 수 있었지만 시골살이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집 안팎을 점검하고, 수도도 얼지 않게 보살펴야 한다. 주차장에 세 들어 

사는 강아지도 근심거리다. 무엇보다 이제 겨울 초입인데 마당살이하는 고양이에게 올겨울 추위가 너무 가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기요를 깐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전화로 밀린 글을 읽고 있는데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12시~14시 사이에 생굴이 배송된다고 한다.

며칠 전 ㅇㅇ이 전화를 했다. 요즘 들어 소식이 뜸해 걱정하던 차에 반갑게 받았다.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딸아이 건강이 좋지 않아 여러모로 마음 쓰느라 연락하지 못했다는 그간의 사정을 전한다. ‘그 정신에 굴이 다 무슨 소용이냐, 신경 쓰지 마라’고 만류했지만 그래도 꼭 보내겠다 하더니 오늘 그 굴이 도착한다.     


ㅇㅇ은 십여 년 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2년간 같은 학년 담임을 했던 후배 교사이다. 그녀와 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나 일하는 방식이 비슷해서 성격이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나이 차가 많이 나긴 해도 언니, 동생처럼 속을 터놓는 사이가 됐다.

결혼 후에는 남편의 근무지인 거제로 전근을 갔고 그때부터 해마다 잊지 않고 통영 산지의 싱싱한 굴을 보내주고 있다. 통영 굴은 씨알이 굵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그녀가 보내주는 굴은 김장 때에 도착하면 싱싱한 굴보쌈이 되고, 시부모님 기일에 맞춰오면 훌륭한 손님 접대 음식으로 거듭났다.

 제 마음 추스르기도 힘들 텐데 이런 일까지 신경 쓰는 걸 보니 더욱 짠한 생각이 든다.     





 “우와! 굴 크기 좀 봐.” 김장에 넣는 굴은 중간 크기인데 올해는 일찍 김장을 끝냈다 했더니 제일 큰 놈들로 보냈다. 갓난아이 손바닥만 하다. 한 알을 남편 입에 넣어 주니 싱싱한 데다 커서 먹을 게 있다고 좋아한다.

깨끗이 씻어 저녁에 요리할 양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소분하여 냉동실로 보냈다. 올겨울 굴 떡국과 굴국밥이 되어 몇 번이고 식탁에 오를 양이다.     

굴은 신선한 채 생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보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사진으로라도 전할 겸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굴국과 무침, 전 세 가지를 작정하고 냉장고를 뒤져 무, 대파, 고추를 찾아냈다.


순식간에 굴국이 끓여졌다. 굴의 진한 풍미와 아울러 겨울 무의 달큼한 맛과 청양고추의 알싸함이 더해져 시원함이 배가 되었다. 이제 내 솜씨도 제법이다.     

다음으로 무채를 썰어 넣고 만든 새콤달콤 굴무침이다. 미나리나 쪽파가 있어야 제격인데 아쉽다. 시내 같으면 근처 마트에서 금방 사 올 수 있겠지만 부러 그까지 나갈 순 없으니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통깨를 솔솔 뿌리니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마지막 요리. 굴전이다. 파와 청, 홍고추를 송송 다져 넣은 계란물을 입혀 구우니 온 집안에 고소한 굴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굴 무침을 푸짐하게 옮겨 담고 굴전, 굴국에 화이트 와인 한잔을 곁들이니 훌륭한 굴 3종 세트가 됐다.

이 정도면 보내준 이도 좋아하지 싶고, 함께 먹는 사람에게도 생색이 난다.

ㅇㅇ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었는데도 가슴 한편이 헛헛한 게 그녀에게  마음이 쓰인다.    

 

30대 초반에 만나 십 년을 넘게 봐온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생을 살아내는 사람이다. 파도가 잔잔하기만 할까마는 그녀가 넘는 인생의 파고는 높기만 하다.

젊은 나이에 사는 게 녹록지 않은 그녀를 보는 게 안쓰럽고 마음이 편치 않다.

생의 길목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돌부리에 걸리고 넘어지는 그녀는 울고 보챌 만도 한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 꿋꿋하다. 그래서 더 애잔하다.

자식 때문에 울고, 웃고, 다시 일어서는 그녀.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녀에게 내 맘이 가 닿기를 바라며 짧은 편지를 보낸다.

 



ㅇㅇ아!

어둠의 끝에 여명이 있듯이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그치면 봄햇살이 내리쬐고 희망의 싹도 돋겠지.

지금은 온 세상이 차갑게 얼어붙어 너를 시련 속에 꽁꽁 얽어매지만, 벌써 지치지 말라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봄은 어딘가에서 천천히 그대를 찾아오고 있음을 일러주고 싶다.

생명을 품고, 지켜 내는 일보다 더 큰일이 있을까.

그러니 너는 강해져야 한다. 엄마니까. 

아이를 돌보는 일이 부모의 역할인 것처럼, 너 자신도 돌보아야 한다.  

네가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아이도 너를 믿고 의지할 수 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내 속마음은

내일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대에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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