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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n 05. 2024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소개서

(너무 오래) 쉬는 배우(백수)에 대하여

24. 5. 29



충동적인 하루다. 꽤나 오래 늘어져 있었는데, 그간의 버둥거림을 생각하면 이 오랜 무기력에 자의의 지분은 없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눈을 떴을 때 간만에 묘한 의욕이 느껴져 기쁘다가도 지금 몸에 퍼지는 이 기운마저 결국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들이닥친 낭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조금 풀이 죽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감각해 온 평생인데, 때마다 내가 속한 종의 특성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헛헛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간신히 올라온 기분을 가라앉힐 시도를 해 볼 정도의 도전적인 자존심은 없다. 우울 속에 헛발질하느라 아까워 죽을 몇 주가 갔지만 이제라도 무기력을 걷어내 준 누군가 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아무튼 어딘가에 있을 존재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겠다. 나의 노력은 승화했는지 증발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이유 모를 유쾌함이시여 씻고 올 때까지 사그라들지 말아라, 말아줘, 말아주세요, 반복하며 입꼬리와 커튼을 걷어올리고 창문을 열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아침엔 커튼부터 걷고 햇빛을 쐬는 게 여러모로 좋다는, 뭐 이 정도의 상식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니 나를 위한 노력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되어본다. 그에 덧붙여 열린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깥소리를 들으면 세상과 연결되는 스위치가 켜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용이하다.(그러고는 세상과 함께는커녕 단절에 가까운 하루를 보내겠지만.) 아무튼 아침부터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빠진 진중한 사람인척 매트리스를 빠져나와 욕실로 들어서는 사이에 공복에 먹으면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는 탐욕. 되게 잘 살고 싶은가 보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순간 머쓱해지지만 찬물로 얼굴을 때리며 민망함을 잊어본다.


가끔은 일기장 말고 블로그에 일기를 기록해 봐야지 다짐한 지 반년이 지났다. 가끔이 이렇게 가끔일 줄은 나도 몰랐지. 오랜만에 이전의 글을 보면 늘 무기력에서 벗어나 미약하게나마 글 쓸 의지가 생겼으니 자주 써야겠다는 식이다. 그러고는 또 한참을 감감무소식이던 글이 시작되는 건 못 견딜 만큼 지리한 날들을 보낼 만큼 보낸 후다.


아무튼 오늘은 카페로 기어 나와 집에서는 누릴 수 없는 일조량을 느끼며 노트북을 켠다. 엄마가 알면 아까운 커피값에 대한, 아끼지 못하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한심함에 대한 이야기를 꽤나 찌릿하게 들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걱정해서라는 걸 안다. 그리하여 멀리 있는 부모님이 행여나 혼자 사는 자식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될까 걱정을 하는 (쌍노무) 자식이다. 굳이 자주 연락을 드리지 않는 건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함이라 하겠다.

  

<명상록>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근심하지 말라. 열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하나의 실천적 적용이 중요하다 했다.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넓은 창밖으로 오랜만에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창을 두 개 정도만 붙여도 내 방바닥에 꼭 들어맞겠다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런 생각은 말 그대로 스쳐가게 두는 편이다. 샤부샤부 고기처럼 빠르게 휘저어 삼켜버려야 한다. 오천 원이면 얻을 수 있는 창가에 앉아있는 이 순간이 사치임을 실감해 버리기 전에.


아무튼 최근에 또 못 배우면 죽는(거 아닌 건 알지만 참을 수 없는) 병이 도져 이런저런 수업을 신청했다. 연기 관련 수업들과 늘 그리던 그림, 새로운 취미, 그리고 근래에 너무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아 지성인다운 수업도 몇 개.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상상 속의 멋쟁이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설렘을 안고 있는 시작, 그 직전의 시간이 가장 행복할지도. (정신이 나간 게 아니라) 행복한 일을 벌이며 살아보려는 것뿐이야, 엄마.


일정을 정리하다 중구난방의 수강신청 기록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도대체 뭘 하는 인간인가, 익숙한 생각에 잠긴다.



이방인의 전적.


-생각 없이 또래 친구들과 노느라 바쁠 유년기에는 언니들과 춤만 춤. (발레와 현대무용을 배웠다.)

-세상 모든 중학생들을 까까머리, 단발머리로 만든다는 획기적인 획일화를 추구하던 그 시절에도 '예체능'이라는 한마디로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매 순간 구경거리가 됨.

- 쫓기듯 진학한 인문계 고등학교. 자유롭지 않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자유롭게 운동장을 배회하다 부적응자가 됨.

-결국 다시 예체능 인간으로 돌아가 그 누구도 반기들 수 없던, 하지만 의문스런 이름의 그 '자율' 학습을 빠질 수 있는 '허락'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

-모두가 옷을 만들고 취업을 준비할 때 연기를 하겠다고 연어처럼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가기 시작함. (패션의 f도 잊은 지 오래지만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오늘은 같이 연기수업을 들었던 동생이 청첩장을 주겠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내일은 케익을 만들러 간다. 산뜻한 물속 세상에서 더부룩한 기름이 되어가는 듯한, 배우가 되고 싶었던 30대 인간의 일정.



몇 년 전 한 독립 장편영화 연출부로 일하던 중 모니터를 옮기다 어깨를 다쳤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어쩌다 다쳤는지, 하는 일이 뭔지 물으시길래 그냥 어디 부딪혔어요, 했다. 그 뒤로 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다 손가락을 다치고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땐 크림 짜는 짤주머니 때문인 것 같아요, 했더니 파티쉐이신가 보군요, 하는 민망스런 답이 돌아왔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가련한 순발력 탓에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아주 잠깐 내 처지가 수치스러웠지만 의연한 척은 전문이라. 잠깐 파티쉐가 되어보지 뭐, 하는 표정으로 상담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 몇 달 뒤 작품 촬영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무술(이라기도 민망한 무술) 연습을 하다 다리를 다쳤다. 이번에도 같은 질문에 답하는데, 저번에 파티쉐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고 물으신다. 의사로선 믿을만한 꼼꼼한 차팅이나, 결단코 파티쉐라고 말한 적은 없다.


요즘 집에서는 엄마의 친구의 딸내미가 혹은 아들내미가 결혼을 하는데...로 시작하는 말이 잦다. 누구는 선을 봤다더라, 하다가 너는 직업이 없어 선도 못 보고... 하며 말끝을 흐리신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답하진 않는다. 실은 이따금씩 나도 내가 뭐 하는 사람인가 싶기 때문에, 답하지 못한다.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옆자리에서 염불 외듯 책을 읊는 소리가 세련된 팝송에 뒤섞여 귀에 들어온다. 아, 노래 신나는데. the new respect의 you should be dancing. 샤잠이 알려줬다. 샤잠은 노랫소리만을 잘 인식했지만, 샤잠보다 능력은 부족하나 조금 더 예민한 인간인 나는 반대쪽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일어선김에 걸치고 있던 후드집업을 벗었는데, 얼마 전에 본 뮤지컬 <헤드윅> 굿즈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조금 민망해졌다. 분명 재미나게 관람 후 뿌듯하게 싸안고 돌아온 티셔츠인데도. 몸을 덮은 한 겹의 천으로 나를 판단할 것만 같은 기분에 다시 후드를 걸칠까 주춤댔지만 쫄린다고 빼선 안되지. 오늘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한 번의 용기를 냈다. 배우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던 과거의 나는 이제 없다고 속으로 주먹을 불끈. 잠깐은 뿌듯해져 봐도 괜찮겠지. (백수는 티끌만 한 성취도 우습게 보지 않는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


자리를 옮기기 무섭게 파랗고 두꺼운 민사행정법 책을 덮고 한 사람이 떠난다. 한 칸 멀어진 결과로 열중하던 누군가를 신경 쓰이게 한건 아닌가 싶은 기분에 찝찝해지지만, 이곳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그녀가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에 필요한 건 3초 남짓한 시간뿐이다. 오늘 내 티셔츠를 기억할 사람 역시 아무도 없을 테고.

  잠시나마 테이블과 햇살을 공유했던 그녀. 그녀가 잊지 않기 위해 교리처럼 중얼거리던 세상의 지식으로 단박에 정답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 뿌듯할 무언가를 품고 있길 바란다, 생각함과 동시에 너나 잘하세요, 하는 어느 영화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게으른 현대인의 뜨끔함을 깨우는 잠언 같은 한마디라면 명대사로 남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마다.

  

나나 잘하면 될걸. 옆이고 뒤고 사방을 흘긋거리다 때마다 따끔한 한방을 맞으며 사는 건 아마도 그놈의 나나 잘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겠지.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웅얼거리며 세상에 대한 미련에 잠기는 내공의 부족.

  

아, 이제 집에 가야겠다. 해야 할 일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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