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별 Jun 05. 2024

늙음 지수 중간점검

24. 5. 30



시급에 내어준 시간 동안 케이크를 만들고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 시간 날 때 조금씩 글을 써보자, 하고 생각하면 완성되는 다짐의 손쉬움이 원망스럽다. 왜 그런 피곤한 약속을 했는가. 내가 작가도 아닌데. 아, 다짐이니 약속이니 하는 단어의 거창함이 부담스럽다. 지키지 못할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예방하는 뉘앙스로 다시 묻자.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꾸준히 하지도 못할 거면서 매번 기력이 돌아올 때마다 글을 써야지, 그림을 그려야지, 새로운 걸 해봐야지 하는 이유는 대체 뭔지. 하지만 이렇게 부지런히 나를 알아가는 보람이 증발해 버리는 건 순식간. 곧바로 기질이란 것에 좌절한다. 날 때부터 쥐어진 것들은 대체 어디까지 내 인생을 쥐어틀 심산인지. 덕분에 가끔은 이유 없이 대단한 사람이 되어 들뜨기도 하지만, 날이 갈수록 드문 일이라 요새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장점이다.


 고작 서른셋이 되어 나이를 먹었네 어쩌네 하면 우습기도 하겠지만 나는 말이지 꽤나 진지하다. 33이라는 숫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넘어 '나이를 먹고 있다'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띠동갑을 넘어선 동료가 커피를 내리면 나는 케익을 만든다. 이전에 가게를 소유하고 사장님이라 불렸던 부부는 나보다 어렸고 나는 커피를 내렸다. 몰리는 피에 저려오는 건 종아리인데 왜 내 처지까지 저릿한지. 온몸에 씁쓸함이 퍼져도 털어볼 수 있는 건 쥐가 뭉친 다리뿐. 게다가 점점 다리를 털어야 하는 주기가 밭아진다. 귀찮아서 종종 건너뛰던 압박스타킹. 초여름에 들어섰지만 포기할 수 없다.


스무 살. 노랗게 눈웃음치는 모 패스트푸드점에서 해피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소스 짜기와 맞바꾼 손가락 관절은 금세 돌아왔었는데. 몇 년 전 모 베이커리에서 '날마다' 짤주머니를 짜다 다시 혼미해진 손가락은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틈만 나면 딸깍거리기 일쑤다.


슬픔일까. 한참을 생각해 봤다. 슬픔인지 한참을 생각한걸 보니 슬픔도 없진 않겠다. 그렇지만 슬픔을 떼어내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슬픔인가, 하며 생각의 물꼬를 텄다'는 다소 허무한 이유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한참 후에나 든 건 슬프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좀 더 빨리 나를 알아챌 수 있을까.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삶의 해법인지 아닌지.


해법서를 가장한 자기 계발서에 치를 떨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이지, 푹푹 패이는 논두렁을 걷다 고랑에 빠진 장화를 진흙 속에 꽂아놓고 내 다리만 쏙 뽑아 나오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다. 언젠가는 다시 새 장화를 신고 헌 장화를 찾아 나서야 하겠지만, 당장은 발가락 사이에 드는 미약한 바람이나마 느끼며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부분들을 꼼지락거리고 싶다. 발가락 사이를 스치는 찰나의 바람 같은 자기 계발서를 보고 싶은 충동. 주도적 학습의 버거움을 인정하고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주저앉아 판서를 베껴 쓰고 싶어 지는 것. 나의 나이 듦. 숨 쉰 시간에 비례해 두터워지는 지혜 따위의 말을 하고 싶다면 단전에서부터 비집고 나오는 풉 하는 비웃음을 참아내야 하리라.

  

아직은 없다. 갖추어진 현명함. 몸에 베인 겸손함. 교양 있는 언행 같은 것들. 아직은 모를 일이다. 자꾸 아직은 이라고 덧붙이는 것이 바로 아직이라는 방증이다. 아직은 그렇다, 아직은. 하면서 영원히 나잇값이란 건 못할 것만 같다. 나의 나이 듦은 아직 허술한 애송이인 것 뿐인지, 영원히 처참한 애송이일지. 뭐가 맞을지 두고 보자. 그러려면 오늘도 살아봐야지.


이전 03화 결론은 한컴타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