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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l 25. 2024

딴짓


청소엔 잼병이다. 평소답지 않게 기꺼이 책상정리를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은 후다. 아, 납득이 되는 이유. 미루고 미루던 청소인데, 무언가 할 일이 있을 때면 왜 이렇게 금방 끝나버리는지. 야속하다. 더 정리할 게 없을까 괜스레 깔끔한 책상 위를 뒤적댄다. 더없이 정돈된 책상을 노려보며 잠깐 골머리를 썩다 이내 엉덩이 싸움에서 패한 후 자리를 옮긴다. 느닷없이 시작되는 뜨개질. 마땅히 할 일이 아닌 하찮은 딴짓을 한다는 죄책감을 잊으려 부단히 손을 움직이면서도 뭘 써야 하나, 매번 글감을 찾느라 허덕이니 소질은 없나 보다, 이번에 못쓰면 글 따위는 정말 그만두자, 텅 빈 머릿속을 재촉한다. 엮인 실이 차오르는 동안 머리가 맑아지고 글감이 떠올랐느냐. 그랬다면 이 글의 제목이 딴짓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왜 이다지도 빈틈이 많은 인간인가.


몸에 좋은 건 왜 이렇게나 입에 쓴지. 개같이 벌어도 쓰는 건 한순간, 세상이 싫어질만치 식단관리를 해도 요요는 한순간, 아득바득 유지하던 건전한 습관이 무너지는 것 역시 한순간이다. 억울하다 억울해. 지친다 지쳐.


어제는 친구가 물어왔다.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는 것 vs 아무리 안 자도 안 피곤 한 것. 무엇을 선택하고 싶냐며. 무엇도 거저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단 하나쯤 쉽게 얻어보고픈 인간의 지친 마음이 만들어낸 밸런스 게임. 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눈앞의 숙제를 해치우려 백이면 백 땅을 파고 짐을 나르고 헤엄을 쳐야 하는 고된 일상 끝의 시원한 생맥주 한잔 같은 위안거리다. 음, 뭐가 좋을까. 상상해 보는 동안엔 즐겁지 않은가.


자꾸만 옆길로 새는 마음을 삐죽삐죽 나온 종이뭉치 추스르듯 착착 가다듬고 자리로 돌아가 본다. 은행빚처럼 턱턱 쌓여가는 삶의 무게에 숱하게 좌절하고 잦은 딴짓을 하다가도 깊은 심호흡과 함께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우리들. 누군가는 안부인사로, 누군가는 칭찬과 감사의 말로, 누군가는 유머로, 누군가는 턱턱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는 손길로, 누군가는 따듯한 눈빛과 작은 미소로, 누군가는 그림과 노래로, 또 누군가는 조용한 글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풍성해지는 딴짓의 시간. 오르락내리락 울렁울렁한 여정 가운데 피식 웃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훈훈한 삶의 틈새.


가끔은 빈틈이, 딴짓이 필요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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