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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Aug 01. 2024

유난


심각한 귀차니즘. 핫플은 무슨, 집이 제일이다. 널려있는 선택지. 가장 편리한 것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지. 모두의 최상위 선택 기준이 다만 편안함 혹은 효율이냐 묻는다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온다. 아니다,라는. 자동차 종주국 독일은 여전히 수동기어 차량을 선호하고, 비효율적인 도장을 없애라고 했더니 도장 찍는 기계를 만들어버린 일본.


나는 어떤가. 커피도 배달이 되는 시대에 원두를 골라 갈고, 그라인더를 청소하고, 드리퍼를 준비하고, 물을 부어 똑똑 고소한 향을 머금은 액체가 떨어지길 가만히 기다리다 다시 물을 붓기를 적당히 반복한다. 그제야 음미하는 한 모금. 참으로 비효율적인 하루의 시작. 전자기기를 뒤로하고 종이를 펴고 만년필을 골라 일상을 꼭꼭 눌러쓰는, 역시나 비효율적인 하루의 마무리. 덕분에 처치곤란이 되어 쌓여가는 종이뭉치들도 전자기기 메모장 하나면 단박에 문제해결인 것을 알지만, 해마다 일기장이며 잉크며 만년필 고르기를 멈추지 못한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내 삶을 이끌어 온 것은 나의 체험이 아니라 그 체험을 이야기하는 태도였다.

장 주네 <도둑일기>의 한 구절.


태도의 힘을 믿는다. 태도를 유지하는 시간의 힘 또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태도다. 신세계의 체험이란 실로 그리 어렵지 않다. 변화하는, 누군가 변화시키는 세상에 덜컹덜컹 실려가면 그만이니. 나다운 태도야말로 절로 얻는 종류의 것이 아닐 테다.


유난 떨며 살지 않아도 숨 쉬고 사는 데에 아무런 지장도 없지만(오히려 속편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을 기껍게도 불편하게 즐기고 꼴사납게 보호하려 떨어보는 유난. 이것이 나의 교리. (전도는 하지 않는다.) 하여 유난을 떨수록 마음은 깊어진다. 나와 너를 구분함과 동시에 인간성을 공고히 해주는 독창성 개발 장치라고도 하겠다. 나의 내면을 기어이 무언가로 승화시켜 보려는 그 집요한 과정은 그저 그렇지만은 않게 생존하는 데에 단연히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예술을 이렇게 정의했다.

예술이란 필요 이상으로 좋은 무언가를 말한다.


유난 떠는 삶을 추천한다. 철저히 사랑하고 즐기며 살아내길 기원한다. 필요, 그 이상의 태도는 예술. 태어난 김에 예술적 태도의 인생이라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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