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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베드에서 책 읽으며 맥주 마시기

스페인에서 한 달 살기

by 딸리아 Nov 09. 2022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이 파랗다.


1월의 따뜻한 햇살이 반갑다, 일찌감치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고 서성인다. 책도 읽어야 하고, 햇살도 받고 싶고, 평소와 다른 일상도 보내고 싶고. 일요일 오후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밖으로 나가 햇살을 온전히 받으며 읽을까,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발코니로 나갈까.


스페인 말라가, 여기 머문 4주 동안 딱 두 번, 여유와 사치를 부린다. 일요일 오후를 계획한다.


사람 찾아 이곳으로 날라와 놓고 오늘은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 월요일에서 금요일, 액티비티가 있는 주는 토요일까지. 국가와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 속에서 생존을 향해 몸부림친다. 때로는 편치 않은 웃음을 내보이며 한 주를 보낸다. 그랬기에 오늘 하루는 오롯이 나만 바라보며 편하게 내지르고 싶다. 


책에 있는 글자들 하나 하나를 보고 읽으며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으련다. 그저 하늘과 바람과 햇살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느끼련다. 일주일의 휴식이자 일년 중의 휴가다운 하루를 보내련다. 


냉장고에서 맥주 몇 개를 꺼내 들고, 한쪽에는 책과 담요를 챙긴다. 1월의 말라가는 낮 기온이 12-17도로 아직은 쌀쌀하다. 


수영장 문이 열려 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나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보이는 건 오직 파란 하늘과 잘 닦아 놓은 맑은 물뿐이다. 수조 가득 채워진 물은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담고 있다.

오늘은 나 혼자 마음 먹었나 보다. 어디에도 누구도 없다. 썬베드 몇 개를 움직여 책을 읽다가 잠깐 졸기에도 좋은 환경을 만든다. 


비로소 나의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떠나온 이유이다. 일상으로부터, 일상에서의 자유를 만났다.


새로운 공간에 놓인다는 것, 일상에서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출퇴근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자유롭고 싶어 떠난다고 하면 의아해 한다. 일년을 쳇바퀴 돌 듯 사는 자기들이 더 간절하다는 듯 바라본다. 그들의 눈빛 어디에도 떠날 수 밖에 없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1도 없다. 그저 놀러 가는 나, 나의 시간을 부러워할 뿐이다.


회사 이름을 짓고 개인사업자 등록을 한 이후, 제안서 쓰고 계약서에 사인하고 프로젝트 수행하고 인건비 송금하고 보고서 제본하고 등 하나에서 열까지 짚어가며 선택하고 결정한다. 프로젝트 멤버들과 회의를 하더라도 솔루션 몇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더 나은 대안을 끌어내더라도 재료가 필요하다. 될 성 싶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나야 회의가 진행되고 마칠 수 있다. 


박사님, 대표님, 교수님, 전화로 카톡으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생각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해야 할런지, 의견을 주고 받으며 통합하고 작성하고 제안하는 일의 연속이다. 강의를 하고, 자문을 하고, 인터뷰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회의를 하고. 인터넷을 뒤지고, 논문을 읽고, 자료를 모으고, 끝내 보기 좋게 문서를 작성하고. 한 동안 꼼짝없이 앉아 내 안의 것을 쏟아 놓는다. 쏟아 내고 나면 허탈하기도 하다. 


쏟아낸 만큼 채워야 한다. 쏟아내는 것도 일이지만 채우는 것도 일이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부모님 댁에 간다. 어쩌다 찾아 온 딸에게 “왜, 일 없어?”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난 왜 그렇게 듣기 싫은 걸까. 한 순간 나를, 딸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듯. 하루하루 일감 받아 돈 번다고 생각하는 양, 일 없어 놀고 있는 나를 걱정하신다, 몇 날 며칠 밤새워 일했거만 나의 노고는 사라지고 빈둥대는 딸이 되고 만다. 매일매일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하신다. 그런 엄마를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앞날을 걱정한다.


휴식, 일상에서의 사고와 신체가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순간


휴식(休息)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후 지친 몸이나 머리를 쉬게 하는 것’으로, 능동적으로 리프레시 하게 하여 즉 신선한/새로운 공기를 주입시켜서 나를 둘러싼 공간이 환기되는 것이다. 

새로운 공기는 나의 신체를 매개로 건강한 입김과 콧김으로 전환되어 배설될 때 진정한 휴식이 된다. 휴식을 취하는 이유는 더 나은 사고와 신체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새로운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 책을 앞에 가져다 놓든, 자연을 앞에서 맞이하든 움직여 채워야 한다. 


한국을 떠나 이곳 스페인 말라가로 날라와서 말라가에서의 일상을 벗어나서 일요일 어느 오후 수영장 한 켠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한국에서 마시던 ‘버드와이저’인데 왜 이리 맛나냐. 


그간 지나온 시간을 되짚으며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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