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한 달 살기
수업도 액티비티도 없는 오늘 느즈막하게 일어난다. 카페테리아의 아침 메뉴는 주말에도 같다. 뭘 먹지 하는 기대감 없이 오늘 하루도 에너지를 충전한다.
내가 요리를 할 줄 안다면, 뭔가 만들어 먹을 수만 있다면 기숙사를 택하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 사는 맛을 느끼려면 보통의 일상을 살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오늘 같은 날은 더 맛나게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일주일에 한 번 전통시장이 열린다는 곳, Mercado Central de Atarazanas.
말라가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아 숨쉬나 싶다. 정오 무렵의 이 곳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관광객인 듯 했고, 현지인들은 채소와 과일, 해산물, 고기 등을 벌써 구입했을 듯. 그렇다. 이곳은 채소와 과일, 해산물과 고기를 파는 곳이다. 사각형 모양의 시장은 4개 정도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가장자리는 해산물과 맥주, 주스를 사먹을 수 있는 Tapaz Bar가 마련되어 있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한 동안 서성이다가 그나마 붐비지 않지만 결정적으로 한 할머니가 맥주를 마시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름 모를 조개류 2개와 새우 한 꼬치를 시키고 normal과 strong 중 무얼 택하겠냐는 물음에 strong cerveza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자마자 프라이판에 구운 조개와 새우가 올려지고, 조개에는 올리브유와 바질, 그리고 소금을 뿌리고, 새우는 무언가와 소금을 뿌려 마요네즈와 함께 내주었다.
그렇게 해서 13 유로 정도
맥주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오늘 아침을 왜 먹었을까 바로 후회하게 만든다. Strong한 것이 뭔지 느껴지는 띵하며 찰나에 두 세계를 넘나든다. 조개 한 개를 먹으니 접시 위에 한 개 밖에 남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고. 새우를 먹는데, 와… 맛있다는 말 외에 다른 게 뭐 없을까. 혼자라는 게 이때만큼 아쉬울 때가 없다. 뭔가 나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은데, 맛에 대해 좀 더 찬미하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네. 새우 위의 소금이 씹히면서 그렇게 짜지 않은 짠 맛이 식욕을 돋운다.
다음 주에는 아침 먹지 말고 일찍 와야지 결심한다.
나도 이제 장을 봐야겠다. 보통 장이라 하면 찬거리를 말하련만 그건 아니고, 냉장고를 채울 나의 식량을 좀 사야겠다. 내가 사는 곳 슈퍼마켓에는 없는 딸기와 체리를 사야겠다. 그런데 여기서 장을 보면 바로 집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처음 맞는 주말인데 바로 집엘 가야 하나. 하지만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오늘은 장을 보는 것으로.
딸기를 몇 개 담지 않았는데 벌써 500g이다. 1kg은 사야 먹을 게 있다 싶어 다시 주문을 한다. 한국에서도 딸기 한 알씩 무게 재가며 파나, 이렇게 작은 g(그램) 단위로 파는 것을 보니, 여기 사람들은 딸기를 별로 안 좋아 하는 것 같다. 하얀 스티로폼이나 투명 박스의 딸기만 생각하다 보니 박스 개념이라 그램 단위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체리도 500g을 주문했다. 전체 14 유로.
그리고 나의 최애 간식 중 하나인 젤리도 샀다. 약 400g에 3.5 유로.
이렇게 맛난 것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침에 먹은 것이 소화되지도 않았고, 맥주와 해산물로 든든해진 탓에 딸기니 체리니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로 냉장고에 넣어 둔다.
냉장고 안에는 먹을 것이 많다. 아이스크림과 하드도 냉동실에 가득 있고, 맥주도 여러 종류 들어 있고, 아침에 배고플 때 먹을 씨리얼 과자도, 내가 좋아하는 나쵸와 감자칩도 있다.
여기서 일주일을 지내면서 만든 나의 루틴이 있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면 더군다나 경옥고를 먹어서인가 배가 꺼지지 않는다. 수업을 끝내고 나면 내가 사랑하는 아이스크림과 과자, 과일을 먹을 시간도 공간도 별로 나질 않는다.
그래서 택한 것이 새벽 3시 30분쯤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나서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과일 하나 먹고, 과자도 좀 먹고. 좋아하는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그나마 살이 덜 찔 수 있어 적격한 시간이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살 찔까 두려워서 먹는 것도 조심스럽게 소극적으로 먹고 저녁마다 산책을 한다. 스페인 오기 전에 쪘던 살들이 조금 정리된 것 같다. 여기 있는 동안 좀 더 정리해서 들어가야 봄을 맞을 수 있겠다 싶다.
공간만 옮겨진 일상을 살고 있다. 일상의 연장선에서 오늘처럼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2020.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