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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10. 2024

너를 사랑하게 되어가는 과정

<여자 3편> 네가 진심이길 바라고 있다.


1.

어쩌다 보니 너랑 처음으로 단 둘이 술을 한 잔 하게 되었다.

“넌 웃는 것도 예쁘고, 착해서 다들 좋아할 거야. 내가 여자 소개 해줄게.”

“아냐. 진짜 괜찮아. 나중에.”

그날 이런저런 얘길 하면서 너에게 이성을 소개를 시켜주려 했는데-.


“옆에 앉아도 돼?”

“그래.”

“너, 진짜 예쁘게 생겼구나.”

너를 쳐다본다. 너의 말들이 진심일까, 무슨 의도일까, 내가 지금 너의 말에 설레도 되는 걸까.


“진짜. 오늘 같이 있고 싶어.”

도리어 나와 너 사이에 스파크를 터트리려고 자꾸 시동을 건다.


너는 다음날 여유가 되어서,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상관없었지만 사실 나는 아침 일찍 나가야 했다. 너는 함께 있자고, 함께 밤을 새 주겠다고 했지만 다 큰 성인 남녀 둘이서 아무 일이 없다 한들 함께 밤을 새우는 것은 꽤나 불순하게 느껴졌다.


“야. 너 취했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와 시작을 하게 되든, 마무리를 짓게 되든 간에 그런 사건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좋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너를 집으로 보내려는데 나와 함께 있으려 했던 너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내가 너를 이상하게 볼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런 네가 싫지 않았다. 귀여워서 좀 더 놀리고 싶었다.


“잠깐 여기 앉아봐. 탄산음료 사줄게. 마시고 술 깨고 들어가.”

아이러닉 하다. 취해서 선을 넘는 짓을 하려거든 기분이 상해서 저리 꺼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술이나 깨고 들어가라며 오히려 붙잡는다. 근데, 선은 못 넘게 한다.


“아무리 그래도, 취해서 이러지 마. 다음 날 술 깨서 후회하는 널 보면 너무 상처받을 것 같고 너랑 얼굴 붉히기 싫어. “

가만히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뚜렷하게 네가 맘에 안 든다는 뜻으로 말한 적은 없다.


“네가 그렇게 싫으면 나 집 갈게.” 너는 토라진 듯 입술을 삐죽이며 이야기했다.

“알겠어. 잘 가.”

나는 매몰차게 뒤돌았다. 우리는 반대편으로 걸었다. 뒤를 돌았는데, 실제로 내가 없어져서 황당함을 느꼈는지 이내 내게 전화했다. 벨소리가 울리고 5초, 나도 슬쩍 뒤를 쳐다보니 나 또한 네가 보이지 않는다.


“여보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바로 가는 게 어디 있어-.’

“네가 간다며.”

‘.. 그래도.‘

“나 아직 안 갔어. 이리 와. “

나는 다시 되돌아 다섯 발걸음, 네가 아직 보이지 않아 다섯 발걸음 더 걸었다.


꽤나 멀리 갔었구나-. 를 깨달을 때쯤,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너도 나를 발견했는지 저 멀리서부터 예쁜 미소가 보인다. 점점 너의 얼굴이 선명해질 때쯤, 네가 활짝 웃으며 두 팔 벌려 뛰어오고 있었다.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네가 나를 꽉 껴안았다.

“아직 안 가줘서 고마워.” 너는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파묻으며 이야기했다.


당황스럽다. 그렇게 놀리듯이 재고 따져서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 네가 나한테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

.


나는 대리를 불러 집으로 향하는 길에 너를 집에 내려다 주었다.


한숨을 푹 쉬며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 네게서 전화가 왔다. 너, 안 자는구나.

“응. 여보세요.”

‘집 도착했어?’

“이제 주차장.”

‘... 오늘 일은..‘

“나 너랑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아. “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지내야 우리가 안 불편해지는 거지.”

‘.. 그런 게 어디 있어.’

너는 이미 우리가 만나거나, 만나지 않거나. 둘 다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똑같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다만, 만나면 헤어졌을 때 상처가 몇 배로 커져있을 거고.

만나지 않으면-,


.. 언제든지 또 우린 위험한 관계이지 않을까.


‘네 말 잘 알겠어. 없던 일처럼 대하고 싶은 거면, 그렇게 할게.’

“.. 그게 없던 일이 어떻게 돼..”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그러게, 나 뭐라고 지금 너와의 관계에서 이렇게 재고 따질까 싶다.


‘일단 내일 아침 일찍 근무라며. 몇 시에 출발해?‘

“여섯 시쯤. “

‘일단 자. 자고 일어나서 이야기하자.’


나는 밤을 설쳤다.

거의 두어 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일어나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한 채 차에 탔다.


‘지이이잉-.’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나가라고 맞춰놓은 알람인가 보다.


근데, 확인해 보니 어제 그 번호.

“.. 여보세요? “

‘응. 너 출근 잘하나, 걱정돼서.’ 자다 깬 목소리.

“.. 난 잘 일어났지.. 걱정돼서 일부러 일어난 거야?”

‘그럼. 내가 지금 일어날 일이 뭐가 있어.’

잠시, 기분 좋은 착각을 해본다. 네가 내게 진심일 수도 있겠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를 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길 바라는 것 같다.


상처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2.

“어디, 너는 그냥 누워있어-!”

내가 괜히 너의 공간에 침범해서 취식하고 있다고, 민폐인 것 같다고 느낄 때 스리슬쩍 청소 도구를 들었다.


너는 으름장을 놓으며 물에 손도 묻히지 마라, 너 시키고 싶지 않다 이야기했다.


너는 내가 너의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전까지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자신이 갑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네가 하는 거 싫어. 우리 관계에서 네가 고생하는 건 싫어. 내가 하게 해 줘. “

몇 번이고 내가 하려고 하면 네가 몇 번이고 참았던 사람처럼, 눈이 축 처져서는 진짜 싫은 것처럼 이야기했다.


집안일은 젬병이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너는 서툴지만, 늘 진심이었다.


그리고 내가 진심이 되게 끔 만들었다.




3.

내가 너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네가 나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 네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을 보길 바라서. 여러 이유로 너에게 내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너는 내성적이고,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늦게까지 야근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내 이성친구들에게는 싹싹하게 대하고, 내 동성친구들에겐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티 내었다.


너는 처음 마주한 내 친구들에게, “제 자취방 가서 셋이서 더 마셔도 돼요.”, “나중에 편하게 술 드시고 싶으시면 제 자취방에서 드셔도 돼요.” 라며 진짜 친해진 사람끼리나 할 수 있는 제안을 했다.




너와 만나기 시작한 지 약 2주 째되었을 때, 난 처음으로 이성친구와 만났다.

네가 어떤 걱정을 할지 몰라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너의 근무가 끝날 때에는 위치를 알려주며 오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사실 네 성격상 자리가 어려워서 안 올 줄로만 알았는데, 너는 곧장 택시를 타고 찾아와 자리를 함께 했다.


“너무 예쁘지 않아요? 날개 없애는 수술은 언제 한 건지 맨날 물어본다니까요.”

너는 말도 안 되는 멘트를 그렇게 잘도 쳐대면서 민망한 듯 나를 향해 예쁘게 웃었다.

친구는 “미쳤구나.”라며 기가 찬 듯 이야기했다.


그날 실제로, 우린 3차로 너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너는 자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빨래조차 제대로 못해서, 세탁기 안에 몇 시간이고 있다가 말려 꿉꿉한 냄새와 심하게 구겨져 있는 여름 잠옷을 꺼내 입었다.

너는 집 냉장고를 열어 골똘히 생각하다 있는 음식 리스트를 모두 읊었다. 친구는 아무것도 안 꺼내 와도 된다고 했지만 너는 어떻게 그러냐며 아무 음식이나 내어왔다. 있는 게 없어 죄송하다며 너는 머쓱한 듯 웃었다.


냉장고 앞에 서 있는 너의 다 구겨진 잠옷에서 나는 꿉꿉한 냄새가 내게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이런 너를 내 주변에 보여주고 싶은 나를 보니, 내가 널 진짜로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내 무의식이 먼저 인지해버린 것 같다.


.

.


“네가 나 친구들 만나게 해주는 거 좋아.”

“왜?”

“뭔가, 덜 불안해. 네가 친구들한테 날 보여줬으니까 넌 날 쉽게 버리지 않을 거잖아.”

“그런 생각을 왜 해.”

“주기적으로 보여줘. 알았지?”

나는 쫑알대는 네가 귀여워 “그거 아니어도 너 안 버려, 걱정하지 마.”라고 답했다.


불편하고 몸이 고단해도 내 친구들을 만나러 나오는 너를 보니, 네가 꽤나 진심 같았다.

네가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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