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12년의 시작.
“나 아주대병원 응급실이야.” 남편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16여 년 전 12월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결혼 이후 쭉 맞벌이했고, 누가 늦게 들어오더라도 기다리는 것 없이 각자의 사이클에 맞춰 자자는데 동의한 생활을 했으니, 늦어도 무너가 사정이 있겠지 전화연락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렇게 10여 년을 살았으니, 그날도 남편의 늦은 귀가가 이상한 건 아니었다.
남편은 해외 영업업무를 하고 있었고, 해외 출장도 많고 바이어와의 회식도 참 많았다. 바이어와 저녁식사 후 귀갓길에 길에서 넘어졌다는 것. 눈이 많았던 겨울이었으니 구둣발로 빙판에 미끄러졌는데 운이 나빴는지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다쳤던 거다.
아이들은 자고 있었고, 집 가까이 살고 계신 시부모님께 아이들을 봐달라 연락드리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는 넘쳐나는 환자들로 침대도 없어서 남편은 휠체어에 앉아있었고, 한쪽 다리는 앞으로 쭉 뻗어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다리를 고정하는 부목이 대어져 있었던 것 같다.
몇 시간 전에 구급차에 실려 왔는데, 내가 놀랄까 봐 이런저런 수습이 좀 된 후 집으로 전화를 했다는 거다. 참 이럴 땐 독립적인 사람이라 해야 하는 건지, 배려가 깊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어리석다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불행 중 다행히도 다리만 부러진 상태였다.
담당 의사를 만났는데, 왼쪽 다리가 심하게 골절되었다 했다. 심한 분쇄골절. 무릎 아래쪽으로 뼈가 몇 동강이 났고, 철심을 받는 수술이 필요하다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병원에서는 당장수술을 할 수 없다. 그러니 협진정형외과 여러 군데를 알려주겠다. 그중에서 원하는 병원을 정하면 연결해 주겠다 했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정했다.
남편은 구급차를 타고 그 정형외과로 이동했고 바로 다리에 철심을 몇 개 박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 수술이 있기 불과 몇 년 전 시어머니께서 간수술과 암 수술을 연달아서 하시는 일을 겪었던 터라, 솔직히는 골절수술은 뭐 큰 수술이 아니라 는 생각도 들었다. 머리를 다친 것도 아니고, 장기가 손상된 것도 아닌, 그저 골절이니 뼈만 붙고 깁스만 풀면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골절수술이 끔찍한 12년을 보내게 한 아토피, 정확히는 화폐상 습진의 시작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