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도 아내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언쟁으로, 삐졌다.
애벌레 번데기 되듯 이불 속에 들어가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그냥 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한다고, 아내는 혼자서 아이들을 재울 준비를 하고 나 없이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오늘은 넘기지 말자'라는 교전규칙 아래 자정께 화해를 했으나, 삐졌던 마음이 '화해' 한다고 한여름에 아이스크림 녹아 흐르듯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속에 불을 켜고 살펴보니, 그렇게 할 수 있는 밝은 에너지가 방전되어있었다. 아마 육아 우울증 비슷한 어떤 것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남자가 삐지고 그러냐, 무슨 남자가 육아 우울증이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좀 있을 수 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물론 성질머리의 본질이 어디 간 것은 아니니 다 때라 부수고 할 수도 있지만, 가정 내에 서니까 삐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항변이자 저항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명칭이 '삐짐'이라서 좀 후져 보이지만, 쉽게 말하면 기분 나쁘다 이거다.
나도 여타의 사회생활 모두 접고 아침 점심 저녁 새벽 할 것 없이 가정에 집중하고 있으니 감정의 에너지가 방전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삐질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다. 이런 나에의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생각해보면 딱히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우리 마주한 이 산적한 과업들은 우리의 몫이고 우리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일이 아닌데 그 누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주겠는가.
물론 나도 잘못이다. 툭하면 폭발하고 툭하면 삐지는 것 말이다. 에너지의 고갈이네 뭐네 하는 것들은 사실 핑계고 내 인성이 아직 부족한 탓이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디 가서 하고 싶은 말 하고 자기 고집 쉽게 굽히지 않는 편이라 더 충돌이 생기는 것도 있다. 그러니 호랑이 같은 아내와 한 살 어리지만 용맹한 토끼가 싸움이 되는 것이다.
물론 보통은 속 넓은 호랑이가 품어주지만 토끼에게도 당근 정도는 갉아버릴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도 있고, 원하면 어디든 땅굴을 팔 수 있는 앞발과,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쏜살같이 내달릴 수 있는 뒷다리가 있다!
아무튼 별 것도 아닌 걸로 또 삐졌다. 오늘은 항거의 뜻으로 집안일 내팽개치고 나왔다. 물론 이따 들어가서 또 결자해지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고 나오니 마음은 편치 않고 몸은 편하다. 이 것도 좀 괜찮은 휴식의 방법이다- 싶다.
분명 아내의 마음도 방전되어있을 텐데, 나와 아내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