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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살만해지면

내 인생의 럭키 스트라이크

by 아빠 민구



행군을 할 때, 병장보다 이등병이 먼저 지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몇 번 걸어봤던 그 길의 끝을 알고 걷는 병장에 비해, 이등병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끝 모를 길에서 정신이 소진되기 때문이다.


육아도, 가사도 그런가 보다.


파도와 같이 밀려드는 끝도 없는 일을 기계처럼 해치우면서도 약간의 여유를 누리는 것은, 말년 병장이 행군하듯 그래도 전에 해봤던 일들이라서 그런가 보다. 우리는 밀푀유처럼 겹겹이 둘러쳐진 하루하루를 해쳐나가면서도 그다음을 짐작해가며 버텨나가고 있다. 해봤으니까.


어떻게 보면 티는 동시에 즐긴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거나 아직 없는 친구들은 우리 부부가 여유 있게 네 아이 육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한다.


애 키우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저녁 6시부터 9시까지는 참 분주한 시간이다. 특히 우리 집은 더욱 그렇다. 좁은 집에 더 좁은 화장실 하나를 가지고 네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잘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아내는 식사를 준비하고 나는 네 아이를 씻긴다. 좁은 집은 생존을 위해 분주한 여섯 명이 내뿜는 열기로 금세 후끈 달아오른다.


며칠 전, 여느 때처럼 6 to 9 전투를 치른 베테랑 우리 부부는, 그래도 수월하게 하루를 끝냈다며 자축하고 빵을 뜯었다. 빵이 곧장 식도로 넘어가서 떨어진 당을 채워주었다.


물론 힘들다. 이 떨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뒷목이 땡땡-하게 긴장된다.


힘들지만 아이들 하는 짓 하나하나, 눈빛과 숨소리 하나하나 너무 예쁘고 귀여우니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오늘, 아이들을 보며 설거지를 하던 아내 입에서 무슨 말인가가 튀어나왔다가 급하게 주어 담았다.


"아유 정말 예쁘다- 나중에 좀 살만해지면..."


살만해지면 아마 하나 더 낳자는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내가 추궁했으나, 아내는 정신을 차리느라 그런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무 말도 아냐, 말 끝까지 안 했잖아-"라며 강한 부정을 했다.


내 귀엔 선명한 긍정으로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장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힘든 것은 미뤄두고, 아이들이 너무 예쁘니까 들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젊은 날 바쳐가며 거름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 바탕에서 앞으로도 아름답게 피어날 꽃을 생각하면 거름은 기꺼이 썩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꽃. 네 송이는 피었는데 다섯 송이는 못 피울까.


군인 월급 뻔한데 거 애만 계속 낳아서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는 거 아니냐며-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애 하나 사교육 감당하기도 버거운 월급인 건 맞으니까. 하지만 그게 그렇게 돈으로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기에는 일반화할 수 없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우리 부부는 생각보다 많은 사랑과 정성을 아이들에게 쏟고 있고, 아이들도 예쁘게 잘 크고 있다. 아직 사교육 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특별히 학원에서 학원으로 돌리지 않아도 자기 갈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키울 것이다.


'아이를 왜 그렇게 많이 낳냐'라며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 반대로 생각한다. 아이를 왜 안 낳냐고. 이렇게 이쁘고 이렇게 행복한데,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걱정이고 두려워서 낳지 않냐고.

서로의 지식과 경험이 다르고,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한 이해는 못하겠지만 분명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자원이 소모되고 더 많은 행복과 아름다운 경험이 생산된다. 강요할 이유는 없지만 정말이지 권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그런 측면에서 나도 아내 의견에 동의한다. 좀 살만해지면- 한 명 더 낳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건 내 아내가 정말 대단한 여자라는 점이다. 이런 대단한 여자와 결혼하다니- 당신이란 여자, 내 인생의 럭키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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