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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사는가

그래서 하고 싶은 말

by 아빠 민구


백신 접종 이튿날, 세상이 핑핑 돌고 온몸이 쑤셨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장모님이라도 계실 때 맞을걸 그랬다.


시름시름 앓든지 말든지 세상은 돌고 아이들은 운다. 오늘만 해도 세탁기가 다섯 번 돌았고, 12인용 식기세척기가 세 번을 돌았다. 토하듯 쏟아져 나오는 세탁물들을 소파에 쌓아놓고 빨래를 개며 생각한다. 이번 달도 전기세와 수도요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왔다고.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사는가 하는 질문에는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물질과 환경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먹을 음식도, 입을 옷도, 누울 침대도 필요하고- 각종 비용을 치를 돈도 필요하고- 그 돈을 벌 수 있는 직장도 필요하다. 필요한 게 한도 끝도 없이 많다. 우리 집 여섯 식구가 사는데 필요한 재화는 다른 집에 두세 배가 되는 게 당연하다.


사람이 무엇이 되어 살아가느냐 하는 질문에는 우리에게 부여되는 수많은 역할 기대와 책임감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이자 자식이고, 남편이자 형제이다. 직장에서는 직책과 계급이, 사회적으로는 명예와 권위가 따라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이 되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소중하게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인하여 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사랑과 행복, 자아성취라고 할 수 있다. 비교대상도 없고 감정적 교류도 없이 혼자 산다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가치들이다. 아마 내가 지금 느끼는 그 무언가는 그런 것들인 것 같다.


몸이 아프고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전기세가 나를 놀라게 해도 자다가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빨래를 갤 수 있게 하는 힘.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 사고와 끊임없이 밀려드는 과업과 끊임없이 돌아가는 하루하루에도 불구하고 정신줄 잡고 나아갈 수 있는 바탕.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마 혼자 살면서는 절대 느낄 수 없었을 사랑과 행복, 성취감이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아내의 '살만하면 하나 더 낳고 싶다'라는 충격적인 발언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하루하루 버겁고 무겁지만 마중물을 넣어 펌프질을 하면 그 몇 배가 되는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처럼- 아이들로 인한 사랑과 행복감은 이루 다 적어 내려갈 수 없다.


쌍둥이들을 맞이하며. 기억력이 별로인 내가 이 부족한 필력이나마 하루하루를 기록해 놓는 것이 나와 아이들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잡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네 시간 잘 걸 세 시간 자며, 두 시간 잘 걸 한 시간 자며 석 달에 걸쳐 육아일기를 적어냈다. 몸이 축나고 정신이 헐거워졌지만 시간은 흘렀고 아이들은 92일째 세상을 살아나가고 있다.


그 글들이 어림잡아 서른 편이 되었고, 브런치 북으로 한 단락 짓고 넘어간다.


나에게 이 모든 사랑과 행복을 가져다준, 그리고 하루하루 나와 같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내에게 정말 많이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쌍둥이들이 태어났음에도 잘 먹고 잘 놀고 잘자며 동생들까지 챙기는 첫째와 둘째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열악한 환경, 부족한 아빠 자식으로 태어나- 석 달째 열심히 건강히 예쁘게 자라고 있는 쌍둥이들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드린다.


결혼 정말 잘한 것 같다. 아이 갖길 정말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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