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앙 울어대는 쌍둥이 둘을 안고서 노래를 부르고 있자 하니 에어컨 바람이 무색했다. 온몸에서땀이 샘솟았고 동시에 갈증이 찾아왔다.
"아, 막국수에 옥수수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좋겠네"
말을 뱉고 나니 혼자는 아니었지만 혼잣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육신이 현실에 메여 아이들을 안고 진땀을 빼는 사이, 정신은 훨훨 날아 태백산맥을 넘어 고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2011-2013년엔 강원도 고성에서 근무했었다. 고성. 내 생각에 고성은 우리나라에서 산과 바다가 기장 아름답고 깨끗한 곳 중 하나이다.
당시, 주말이면 혼자 혹은 친한 동료들과 MTB를 타고 고성과 속초를 훑고 다녔다. 동해를 따라 뻗어있는 7번 국도와 해안도로는 물론이고, 진부령과 미시령, 크고 작은 산길과 봉우리나 계곡 사이에 나지막이 들어앉은 작은 마을들 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고성을 만끽했다.
그렇게 지칠 때까지 페달을 밟고 밟다 '막국수' 간판이 보이면 자전거를 멈췄다. 고성은 정말 막국수의 나라 같은 곳이다. 어디를 가든 크고 작은 막국수집이 있다. 대략 집 다섯 채 정도만 모여있으면 그중에 한 채는 막국수 집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집집마다 맛도 특징도 조금씩 다르니 안 먹어볼 수 없다.
막국수를 시켜놓고 바보같이 갈증을 그대로 견디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막국수를 먹으러 갈 때면 언제나 옥수수 막걸리를 한 병 시켰다. 고소하고 달콤한 옥수수 막걸리가 목젖을 따라 내려가면 갈증도 가시고 기분도 좋아졌었다. 옥수수 향기가 코끝을 배회할 때 즈음되면 막국수가 나오는데, 아직까지 고성에서 맛없는 막국수를 먹어본 기억은 없다.
막국수 가게에 따라서 명태 식혜나 수육, 황태구이, 전병 등을 파는데, 함께 먹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잔치상이된다. 그렇게 배를 채운 뒤 터질 것 같은 허벅지와 배를 뒤로하고 지도를 어플을 켜본다. 몇 키로를 달려왔는지, 내가 어디인지, 지금부턴 어디로 향할 것인지 등을 잠시 고민하곤 가게를 나선다.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괜찮다. 이 고개만 넘으면 또 막국수 가게가 나올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 동안 고성의 막국수 집들을 집밥 먹듯이 먹다 고성을 떠나니 막국수 먹을 일이 없어졌다. 이따금씩 지나가다 보이는 막국수 간판을 보고 들어가 보지만, 그때 그 맛이 아니니 매번 실망만 하고 나오게 된다. 언제 한번 그 시원-하고 깔끔한 막국수를 다시 한 번 먹어볼 수 있을까...!
막국수와 옥수수 막걸리 생각에 잠겨 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데,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쩔쩔매며 두 아이에게 동시에 젖병을 물리기 시작하니, 이내 병원 갔던 아내가 돌아왔다. 그제야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몸은 묶여 방구석을 지키고 있지만, 정신은 잠시나마 고성에 여행을 다녀오니 다소 환기가 되었다. 이번 여름휴가는 멀리 가지 못하겠지만, 언제 한 번 고성에 놀러 갔으면 좋겠다. 아님, 가서 살아도 좋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