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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미안. 난 집에 가

누구에게나 소중한 점심시간

by 아빠 민구



난리다 난리. 코로나로 온 세상이 난리고 쌍둥이들이 울어대는 우리 집도 난리통이다. 이맘때 아이들이 늘 그렇듯 신생아가 우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무더운 여름, 우는 두 아이를 안고 있노라면 5도쯤 더 뜨거운 열돔에 갇혀버리는 것만 같다.


나의 하루는 무겁게 일곱 시에 시작한다. 군인 치고 늦잠을 자는 편이지만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다. 네시에 아내와 교대를 했으니 말이다. 세 시간씩 자면서 지낸지도 벌써. 휴- 시간 빠르네 6주가 되어간다. 처음에는 너무 피곤해서 못 버틸 정도였는데,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기 때문에 또 적응을 했다.


그렇게 아내와 새벽 네 시에 교대를 하고 침실로 들어가면, 아내는 새벽 네 시부터 하루 종-일 쌍둥이들을 돌본다. 얼마간 도움을 받았던 산후도우미도 이제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쌍둥들이 울면 우는 대로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이 자면 자는 대로 집안일을 해치운다. 그렇게 온타임 워크가 새벽 네 시부터 저녁 열 한시까지 무려 19시간이다.


휴식도 없고 쉴틈도 없다. 네 자녀 육아는 생각보다 한참 빡센 것이었다. 출산으로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닌 아내에게 '푹- 쉬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0분이라도 더 자게 해 주고 무엇 하나라도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뿐이다.

평온한 셋째와 불편한 넷째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절대로 야근을 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일과시간을 보낸다. 할 일이 있다면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하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퇴근시간엔 노트북을 접고 일어선다. 그리고 나에게 허락된 또 한 가지, 한 시간 반 남짓한 점심시간이 남았다.


11시쯤 되면 당연히 모든 직장인들의 화두는 "오늘 뭐 먹지"로 수렴한다. 아침도 거른 마당에 짬뽕, 순댓국, 김치찌개들이 호명되면 속이 주리고 쓰리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당연히 질문은 나에게도 돌아온다.


"민구야 오늘 뭐 먹을까?"


잠시- 정말 무얼 먹을지 행복한 고민의 시간을 갖지만, 내 대답은 늘 비슷하다. 아니, 쌍둥이가 태어난 이후로 내 대답은 늘 같았다.


"어, 미안. 난 집에 가"


뭐 집에 대단히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19시간을 내리 일하는 아내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주고 싶을 뿐이다. 식당으로 향하는 가벼운 동료들의 발걸음과, 집으로 향하는 나의 조급한 발걸음은 방향도 반대고 긴장감도 다르다.


마음 급하게 집으로 달려와보면 역시나. 아내 표정은 예상했던 그 표정이고, 식탁에는 급하게 아무렇게나 아침을 먹었는지 햇반 용기가 넘어져있다. 코로나와 더운 날씨로 몇 주째 쌍둥이들과 집안에만 있었던 아내의 표정이 마치 원래 거기 있었던 소파와 같이 푹 꺼져있다. 서둘러 집에 오길 잘한 것 같다. 아니, 일 분이라도 더 빨리 오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만 하다.



어제는, 늘 집밥만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점심시간에 급히 차를 몰아 아내가 좋아하는 치아바타와 소고기를 사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마 남지 않은 점심시간의 달려가는 시곗바늘을 보며 소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해가 머리 위를 지날 그 시간, 소고기의 육즙을 지켜가며 열심히 고기를 구워대니 몸에선 육수가 흘러나왔다.


식사가 끝나니 땀범벅이 되어 '1분' 샤워를 마치고 부대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제일 먼쪽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걷다가 오후 일과 시작시간이 임박해서 뛰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으니 샤워를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 옷이 흠뻑 젖어있었다. 그렇게 '오후'가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동료들은 맛있는 점심도 먹고 낮잠도 자고 커피도 마시면서 활기차게 오후를 시작할 수 있는 충전의 시간이 갖는다. 나 또한 나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소중한 점심시간을 보낸다. 아내에게도 아마 가뭄에 단비 같은 점심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거면 됐다.


무슨 후방에서 근무하면서 최전방 GOP에 근무하는 것 마냥 긴장감을 늦출 수도 없고 충분한 휴식도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우울증과 무력감으로부터 아내를 지키려고 보초서고 있다. 어디 전방 군인들이 들으면 후방에서 근무하면서 먹을 거 다 먹고 할 거 다 하는데 꼴값 떤다고 하겠다.


하지만 나도 전방에 가면 철책을 지킬 것이고- 지금은 후방에 있으니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같이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애가 넷이니 여기도 그리 만만한 전장은 아니다.


나의 이 지극한 아내 사랑이 하늘에 닿아 내일은 쌍둥이들이 그만 울고 더 잘 자길.

뱃살 엄청나온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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