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모두가 잔다.
아내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모두 잔다. 물론 넷째가 한 시간 안에 젖을 먹을 시간이다. 고로 나에게 한 시간이 생겼다. 노트북 옆에 탄산수와 커피병을 세웠다.
나는 '마실 것'을 좋아한다. 종류를 떠나서 '마시는 행위'에 대해서 집착이 있는 정도이다. 무얼 하든 끊임없이 마실 것을 옆에 두고 생활한다. 아- 그래.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젖이 안 나와서 젖을 못 물렸다 했었다. 아마 이것도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온 하나의 결박일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결핍을 주고 있지. 아- 그래. 웃어주지 않는구나.
생각보다 지치고 피곤한 날들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신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단 정식적으로 그렇다. 할 일은 저 멀리 큰 바다에서부터 몰려오는 파도같이 끊임없다. 물론 아내와 함께하지만 가장으로서의 부담이 한 꺼풀 덧대어 있다. 셋째 젖먹이고 트림시키고 넷째 젖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첫째 둘째 목욕시키고 옷 입히고 밥 좀 먹으려 하면 셋째 넷째 잠투정으로 울고 첫째 둘째 밥 먹으라고 잔소리 서른 번 하고 빨래 돌리고 음식물쓰레기 버리고. 아- 맞다. 청약 공고문 검토해야 하는데. 아 맞다 과제해야 하는데. 아- 맞다 이거 해야 하는데- 저거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 할 일은 기차처럼 줄지어 들어오나 싶었는데. 난 디스크로 저린 목을 꾹 눌러 참으며 아이들 젖병을 물리고 있다. 두 손이 결박되어 있으니 잔소리만 늘어난다. 그런 사이 해야 할 일들은 이번 역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서. 가 버렸다.
그런 사이 웃음이 사라졌다. 젖을 먹이고 있는데 셋째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라도 말을 걸어줘야 한다는 생각조차 '과업'으로 전환되어 전두엽에 노크하고 있었다. 그 동그랗고 맑은 눈에 대고 굳은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없었다. 눈을 맞추고 싶지 않아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대신 셋째 아이에게도 '뭘 원하는지', '언제 잘 건 지' 등을 사무적으로 물어보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아빠 인척 대외선전은 다 해놓고. 참. 웃음기 싹 빼고 석탄같은 표정으로 205호 감옥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선장들은 배를 잘 이끌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배가 나가야 할 길을 잘 살피고 바람과 파고를 계산하고 고 인맥을 형성하며 말이다. 그들은 벌이도 충분했고, 그들의 배는 가벼웠다. 그들의 배는 너울너울 파도를 넘어 자유롭게 뻗어 나갔다.
하지만 우리 배는 좀 다르다. 선장은 배가 나갈 방향을 보지 못하고 선원들을 돌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어디 암초에 부딪칠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이따금씩 방황하는 키를 쳐다보지만 여력이 없다. 선원 많은 내 배는 무겁고 추진력이 부족하다. 뱃머리에 부서지는 자잔한 물살도 버겁다.
점심시간에 아내와의 통화에서, 아내는 "금요일이니 불금 보내야지~!" 라며 들떠 있었다. 나는 금요일부터 월요일 새벽까지의 감옥 같은 60시간이 아득해 머리가 하얗게 질려 별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잠시간 정적을 깨고 간신이 찾은 말이라곤 "불금은 무슨"이라는 투박한 대답 뿐이었다. 통화는 어색하게 끝이 났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탄산수를 마시며 글을 쓰는 시간이 되자 내가 뭐 대단한 것을 하려고 이렇게 아등바등거리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고작해야 돈 몇 백만 원 손에 쥐어주고에 맥주 한잔 따라주고 향긋하게 빨린 전투복 한 벌 던져주면 기분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지독하게 동물적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자기 혐오감이 생길 지경이었다.
이게 뭐라고. 이까지 동물적이고 원초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뭐라고 이렇게 웃음기 지우고 사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도 나왔다. 흔하게 반성하고 또, 넷째 깨어나면 웃으면서 젖병 물려야겠다. 우리 아이들은 나의 웃음 결핍으로부터 어떤 결박을 물려받으면 안되니까. 아, 불안정한 금요일- 불금이다. 글 쓰는데 30분 걸렸다. 30분 남았다. 불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