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은 ‘거절머리’가 없다고 한다. (이런 표현이 생겨나길 바라며, 방금 지어낸 말이다:)
우선 자신이 거절을 잘하는 편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자.
만일,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집중해서 읽어주길 부탁한다. (거절할 수 없겠지?)
나는 거절을 잘한다. 물론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철벽을 치며 무조건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받은 부탁이 나의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거나 나를 곤궁하게 만들 소지가 있을 때 선을 긋는다. “죄송한데, 이건 안 되겠습니다.” 물론 비 언어적 표현으로 ‘앙 다문 입술’의 결연함, 단호함과 ‘반쯤 웃으며 우는 눈꼬리’로 못 도와줌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후속조치로 ‘다음번에는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친절한 말까지 덧붙이면 ‘거절’ 완성이다.
우리가 살면서 받는 수많은 제의나 부탁들은 우리를 옭아메는 트랩 같은 것들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질에서는 더 멀어지게 되어있다. 컴퓨터를 하며 수많은 인터넷 창을 띄워놓은 것처럼 복잡하고 느려지고 결국엔 쌓이고 쌓이면 다운된다. 우리의 메모리 리소스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없다.
그런 어지러운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악재 중에 악재다. 우리가 맑은 정신으로 가치 있는 선택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거절할 필요가 있다. 거절머리가 필요한 순간이다.
거절은 우리를 가볍게 만들어주고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거절을 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거절받은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끊어질 수도 있고, 거절로 인해 나에 대한 인식이나 신뢰관계가 저해될 수도 있다. 뭐, 그렇게 잃을게 많은 상황이라면 거절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절대다수의 문제에서 거절은 효과적인 수단이다. 만일, 우리가 거절함으로써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악화된다면, 그런 조건부 만남은 당장 정리하는 게 좋다.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 떠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봉사하고 있을 만큼 우리는 여유 있는 자선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절머리를 키워야 한다.
가장 쉽게 전염병을 막는 방법이 원천적 차단인 것처럼, 가장 쉬운 마음의 항상성 유지 방법은 거절이다. 거절로 우리는 자유롭고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이다. 거절로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곧 결정을 쉽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툴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정신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우리의 정신 에너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사용하자. 남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절절 매고 있지 말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절해야 한다. 거절머리를 키워보자. 당장 실행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