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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지 Aug 25. 2021

[독후감] 작별

한강 단편소설, 은행나무, 2018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갑작스레 눈사람으로 변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치곤 지나치게 담담하다. 적어도 '불행한', '끔찍한', '굉장히 당혹스러운' 정도의 수사는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다음 문단의 첫 문장은 더욱 그렇다.


"징조 같은 것은 없었다. 특별한 날도, 특별한 장소도 아니었다."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아름다운 면들은 찾기 힘든 반면, 불평등과 잔인한 면들은 아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잔인해질 만한 상황이 아닌데, 정말로 특별한 날도, 특별한 장소도 아닌데 마주하게 된다. 이 세상엔 사람을 사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고, 취급당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 속에서 사물처럼 취급당한 세월이 너무 오랫동안이라 홀로 있을 때조차 자신이 사물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근데 하필 눈사람이라니.


왜 작가는 눈사람을 택했을까. 눈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익숙하지만 그 끝은 익숙하지 않은 사물이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낭만적인 날 우리의 낭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 시간 정도가 눈사람의 역할이다. 세 시간이 지난 후 눈사람은 어떻게 되나. 우리는 당연히 모른다. 그 끝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간혹 가다 마음이 여린 친구들이 있을 수 있다. 그 친구들은 눈사람을 집으로 가져가 냉장고에 보관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눈사람의 결말은 녹아 없어지는 것뿐이다. 얼음은 보관 가능하지만 눈은 어떠한 냉동 장치로도 보관할 수 없다. 눈사람으로 변해버린 사람이 살기 위해선 다시 도로 변신하는 수밖에 없다. 눈사람으로 계속 있다면 결국 녹아 없어지게 된다.


마음 아픈 뉴스들이 자주 보인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건이 아닐지라도, 앵커의 입에서 건조하게 흘러나오는 멘트일지라도, 그게 가끔 사람을 아주 지치게 한다. 세상의 잔인한 면들을 마주하며 나아가는 우리의 결말은 결국 어떠할까. 무뎌져 동화될까 아니면 무력한 우울을 느낄까, 그것도 아니면 벌컥 화를 낼까.


이번 <작별>에 나온 주인공은 무뎌진 듯하다. 끝을 직감하면서도 그녀는 발버둥 치지 않는다. 주위의 외면을 인지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사정하지 않는다. 그냥 그녀는 궁금할 뿐이다. 너무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이 비극에 얼마나 열심히 뛰어들어야 우리가 적어도 사람일 수 있을지. 점점 사랑은 필사적인 행위가 된다. 사회가 우리를 자꾸만 무감각하게 만든다.


"내가 널 원망할 거라고 생각해왔을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네가 윤이와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매 순간을 난 명백히 이해했어. 자신을 건설하기 위해 가깝고 어두운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사람의 용기를. 정말이야,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어. (중략) 다만 분명히 알 수 없는 건 이것뿐이야.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한강 작가가 쓰는 감각적인 표현들이 좋다. 특히 색감을 아주 화려하게 사용한다. 붉은, 차게 흰, 무섭도록 검은 등등. 그리고 '딱딱한 침묵', '거의 완전한 침묵', '단단하고 고요한 눈 덩어리' 이런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린 단어도 재밌다.


혹시 드라마 보는 것에 지치고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한 사람이 있다면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어 뒤집어 놓고 고 이 <작별> 책을 후루룩 읽어버리는 것을 아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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