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2022/07/27
그녀들은 서로에게 구원자다. 구원자가 되기엔 지나치게 연약한 그들은, 연약한 구원자라도 유일한 희망이라는 듯 붙잡는 이들에게 수신인이 되어준다. 수신인을 향한 편지들이 북에서 남으로, 뭍에서 바다로, 희령으로 발신된다. 때론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더 가깝게 마주하고 싶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곤 하는 그녀들이다. 그녀들의 사랑을 아프게 만드는 건 비단 남성뿐이 아니다. 그걸 그저 남성이라고 지칭하기엔, 그녀들을 옥죄는 것은 너무나 거대하고 또 그들의 지척에 널려있다. 심지어 그녀 자신이기도 하다. 폭력과 눈물과 사무치는 절망을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 모든 시대 속에서 여전히 살아남아 오늘도 여성이라는 굳건한 틀을 만들어낸다.
남선의 모진 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P220)
책 속에 등장하는 그 많은 편지는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담아 긴 글을 작성했을 당시의 그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편지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전쟁의 피난길을 지나 이제 막 이혼이라는 삶의 길목을 넘어선 화자에게까지 전달된다. 수신인을 정한 편지는 발신자의 삶에 반항을 만든다. 수신인을 정하고 정하지 않고가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정확히 규정하긴 힘들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한 수많은 메세지들이 공허하게 떠도는 지금을 생각해보았을 때 뭔가가 남다른 게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수신인이 있는 편지는 발신자에게 부끄러움을 만드는 듯도 하다.
가끔씩 희자가 편지를 보내왔지만 할머니는 거의 답장하지 않았다. 희자에게 글을 쓰다보면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수록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글을 쓰는 동안 분명해졌는데, 그건 할머니의 일상을 위협할 뿐이었다. (P220)
저자의 말마따나 세상의 거대함 앞에서 찰나이며 너무나 미세한 우리다. 화자의 입을 빌려 저자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떠나는 우리인데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남겨지고 기억되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자문하지만, 오히려 책 전체를 통해 기억하는 서로가 있기에 삶에 온기가 있음을 말한다. 입증하려 하고 주장하려 한다.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첫 문장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밝은 밤'을 썼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작가의 말- 중에서)"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는 자신이 주고 나서 태어난 어느 사람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서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P86)
수신인이 있는 편지는 그런 것이다. 발신인의 삶을 기억하고 또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한 임명장이다. 그렇게 서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쩌면 쓰는 사람의 마음보다도 더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관찰하고 마음에 담아낸다. 모든 이가 자신을 귀이 여기지 않을 지라도 서로에게 불꽃같은 사랑이 되어 그렇게 함께 살아남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할머니는 망설이다 편지를 썼다. 희자야, 내다. 영옥이. 오랜만이야......(P259)
그때 자신이 누구를 부르는지도 모르고 간절히 부르던 사람이 바로 새비 아주머니였다는 사실을 증조모는 그녀의 시선 속에서 이해했다. 너레 내 목소리를 들어주었더랬지. 내가 한 음식을 먹고 맛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어. 너는 내를 삼천이라고 불러주었어. 새비 너는 내를 삼천이라 불러줬었어.(P289)
서로는 서로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서로의 위안이 되어주며 곁에서 함께한다. 함께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