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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ttoo Oct 29. 2022

당근으로 베이컨을 만들 수 있다고?

당근 테킬라 마실래? 당근이지!

당근 떡, 당근 튀김, 당근 베이컨, 당근 푸딩 당근 주스


이번 요리 테마는 당근! 우리는 하필이면 왜 당근으로 요리를 하게 된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당근 테킬라가 시작이었다. 제주도는 귤뿐만 아니라 당근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베스는 해녀 식당에서 당근 테킬라 파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는 나와 베스는 함께 당근 테킬라를 먹으러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먹으러 가려니까 걸리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로 거리가 멀었고, 둘째로는 술을 마시게 되면 운전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거나 대리를 부를 만큼 당근 테킬라를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세 번째로 거기에 있는 안주가 우리랑 맞지 않았다. 나는 비건이라 해산물을 못 먹고, 베스는 그냥 해산물을 싫어했다. 

결국 우리는 당근 테킬라를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당근 테킬라 레시피는 몰랐지만 그냥 당근즙과 데낄라를 섞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시피를 찾아본 결과, 진짜 당근을 간 즙과 테킬라를 섞으면 되었다(?)!


 "근데 당근즙을 짜고 남은 찌꺼기들이 너무 아깝지 않아?"

 "음.. 그럼 그걸로 요리를 해 먹자!"

이렇게 당근 데낄라가 먹고 싶어서 시작한 디너파티는 금세 당근 테마 디너파티로 탈바꿈을 했다.


 우리는 데낄라를 사러 대형마트에 들렀다. 하지만 테킬라는 팔지 않았다. 다른 술은 다 있었는데 데낄라는 없었다. 두세 군데 찾아다녀도 없었다. 심지어 편의점에도 없었다..! 미국에는 술만 모아서 파는 가게가 있는데 제주도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당근 소주.. 이렇게 급한 대로 다른 술로 커버하기로 했다. 당근 테킬라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렇게 당근 테킬라 없이 시작되었다.


요리를 시작하려고 보니 캐롤라인과 베스의 패션이 눈에 들어왔다.

"너네! 당근 요리한다고 당근 룩 맞춰온 거야?" 사실 당근 룩이라기에는 너무 빨간색이었다.

"오~ 캐롤라인, 우리 오늘 옷 트윈룩이다!"

"근데 이거 당근 룩이 아니라 딸기 룩 아니야?"

서툰 한국말로 조곤조곤할 말을 다하는 캐롤라인.

"그러면 우리 나중에는 이거 입고 딸기 요리들 만들자(?)"

베스는 당근을 테마로 요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테마를 미리 정해주었다.

나도 테마를 정해서 요리를 하는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베스와 나는 눈빛으로 서로 동의한다는 것을 서로 느꼈다.


 우리는 요리할 때 쓰려던 사과도 중간중간 집어 먹었다. 장장 네 시간의 기나긴 요리를 하는, 배가 고픈 이들의 몸부림이었다.

 당근즙을 내기 위해 당근을 아주 잘게 썬 이후에 블랜더를 이용해서 당근을 갈았다. 처음에는 당근이 잘 안 갈려서 왜 안 갈리지? 의문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블랜더의 날을 빼고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바보야"

베스는 가끔 이런 귀여운 실수를 한다. 그리고 그런 베스를 마구 놀리는 나. 덕분에 우리의 긴 요리 시간은 절대 지루하지 않다.


당근을 갈긴 갈았는데, 당근 즙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다. 삼인분은 해야 하는데, 거의 한 사람이 한모 금정도 마실 수 있는 정도밖에 없었다. 채소즙을 짜는 기계가 있어야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당근 데낄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들도 참.. 당근을 갈기만 하면 다 될 것처럼 달려들다니. 대책이 없긴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당근즙 1, 소주 3 비율로 당근 소주를 만들어서 애써 느낌을 냈다. 나머지는 그냥 건강주스 느낌으로 당근 찌꺼기도 함께 마셨다. 남은 찌꺼기로는 당근 떡을 만들기로 했다. 


 당근 떡 담당은 나였다. 우리는 떡의 모양을 잡아주는 틀(몰드)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포일로 손수 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밑에 까는 종이 시트지도 없어서 천을 잘라서 직접 제작했다. 천을 구한 게 더 신기하기는 하다.


당근 떡 반죽을 손수 제작한 틀에 가득 부었다. 그리고 나와 캐롤라인은 떡을 찌기 위해 그 틀과 천을 냄비 안에 넣었다. 근데 갑자기 탄 냄새가 폴폴 났다. 알고 보니 쇠와 천이 닿으면서 천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게 황당하기도 하면서 너무 웃겼다. 그 와중에 사진을 찍는 것은 잊지 않았다. 우리는 숨이 넘어가도록 웃으면서 물을 붓고, 입으로 바람을 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또 한바탕 하며 다음번에는 꼭 몰드를 사서 하자고 서로 다짐했다.

근데, 이런 추억이 하나쯤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수제비 모임을 하면서 너무 과하게 많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당근을 썰고, 갈고, 다지고, 데치고, 튀기고, 볶고. 할 수 있는 조리법은 모두 동원했다. 당근을 가는 저 쇠.. 너무 위험해 보이잖아! 나는 무서워서 엄두도 못 내었다. 용기 많은 두 명의 미국인 친구가 대신해주었다. 다행히도 둘 다 손을 다치지 않았다.


당근을 생으로 갈아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그래, 이럴 때는 검색을 해봐야지! 근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당근은 삶아서 먹어야지 영양 흡수가 다 잘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중 유튜브 동영상 한 개는 어찌나 웃기던지! 그걸 보며 또 깔깔 웃었다. 고등학교 때는 단풍잎만 굴러가도 깔깔 웃었는데, 베스와 캐롤과 있으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캐롤이 당근 푸딩 레시피를 찾았다고 했다. 캐롤의 마법의 손으로 이것저것 막 넣더니, 형체를 알 수 없는 요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물론 한국인이 흔히 예상하는 그런 푸딩은 아니었지만, 꽤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디저트로 먹기 딱 좋았다. 달달하면서 부드럽고, 목으로 잘 넘어갔다.


당근과 파와 밀가루를 넣고 섞어서 튀기는 'Plitter(?)'라는 음식도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한국의 부침개나 야채튀김이랑 비슷해 보였다. 실제로도 그냥 당근 튀김 느낌이었다. 


 당근 요리 중에 내가 제일 기대했던 것은 당근 베이컨! 하지만 당근 베이컨을 얇게 자르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이 역시 베스가 했는데 감자를 깎는 칼로 일일이 얇게 슬라이스해야 했다. 베스는 하다 보니 익숙해진다면서 좋아했다. 그렇게 베스는 당근 베이컨 장인이 되어 이름을 날렸다고..



프레첼을 먹으며 그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레시피를 확인했다. 내가 모르는 영어도 참 많았다. 이렇게 요리를 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한국어도 가르쳐준다. 정말 유익한 시간! 베이컨 소스를 만들어서 당근을 그 소스에 절였다.


 우리는 오븐을 예열하고 당근을 구웠다. 모양새는 꽤나 베이컨처럼 생겼다. 그리고 당근은 구우면 달아진다는데 정말 달달했다. 아주 얇게 슬라이스를 한 당근은 아주 바삭바삭했다. 사실, 거의 탔다. 타서 갈색이 되며 베이컨처럼 생기긴 했다. 하지만 조금 두껍게 슬라이스를 한 당근은 쫄깃쫄깃했다. 그리고 진짜 베이컨 맛이랑 비슷했다.

"우와.. 이게 되는구나!"

우리는 다음에도 또 해 먹자고 했다. 정말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술안주로 딱이었다!


 사실, 당근 떡은 망했다. 포슬포슬하니, 전혀 떡 같지가 않았다. 거의 쌀가루를 퍼먹는 수준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떡 전용 쌀을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마트에서 살 때 알고 있긴 했지만 이게 정말 이렇게 처참하게 실패할 줄이야.. 나는 떡을 정말 먹고 싶었기 때문에 정말 실망했다. 다른 것들은 모두 베스, 캐롤이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떡만큼은 내 책임이었다. 근데 망하다니! 정말 슬펐다.

그래도 베스는 먹을만하다면서 퍼먹어주었다. 캐롤은.. 냉정하게 망했다며 다음에는 잘하자고 했다. 그래! 괜찮아. 내가 셰프도 아닌데 뭐 어때?!라고 생각하며 애써 망한 당근 케이크를 퍼먹었다. 버리기는 또 아까웠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장장 네 시간 동안 열심히 요리를 해서 진수성찬 밥상을 차렸다. 요리를 일찍 시작했지만, 왜 끝나는 시간은 똑같은 느낌인 걸까? 그래도 점점 발전해가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는 자칫하면 질릴 수도 있는 당근으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이 글을 통해 당근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한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이 부디 없어지길 바란다! 없어지지 않더라도 당신에게 당근이 지루한 존재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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