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인 인도커리와 감자
최초로 장을 보지 않고 요리를 하기로 결정한 수제비!(수요일마다 제주도에서 비건 요리해 먹는 애들)
과연 그 결과는?
이번 메뉴는 커리! 이를 위한 재료는 캐롤 집에 이미 있었다. 향신료는 대부분 캐롤이 미국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생소한 이름의 향신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채소들을 자르는 역할을 맡았다. 베스는 옆에서 스트레칭하는 역할(?)을, 캐롤라인은 총 감독을 했다.
감자는 씻어서 껍질을 까지 않은 채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무엇이든지 까고 보는 할머니에게서 자란 나는 조금 의아했다. 할머니도 요리를 꽤 잘하시는 편인데, 토마토에 있는 껍질도 싫다며 까시는 분이다. 토마토는 조금 심했지만, 감자 껍질을 까지 않는다니!! 캐롤과 베스는 껍질에 영양성분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며 껍질을 까지 않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나중에 요리된 감자를 보고 감자 껍질이 이 요리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캐롤라인은 레시피도 보지 않고 이상한 가루들을 요리조리 망설임 없이 부었다. 그리고 간을 보더니 버리고(?)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천하의 캐롤라인도 실수를 하는구나~ 하긴,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마 나보다 더 실수를 많이 했겠지.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 같다. 실수를 해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무엇이든지 실력이 는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요리를 할 때 실수하는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나는 실수를 하는 순간 몸이 경직되고 '아, 망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친구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요리를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마인드를 체득하고 있었다.
촵촵 썬 채소를 볶아 숨을 죽인 후에, 만들어 놓은 커리 소스에 넣는다. 그리고 시금치를 총총 썰어서 먹음직스럽게 올려서 익히면 완성된다. 나는 감자도 커리에 넣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기름을 콸콸 부운 후에 마법의 가루를 뾰로롱 넣고, 약한 불에 타지 않게 볶으면 완성된다. 매주 요리를 하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요리를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과감하게 재료를 넣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실수가 두렵다는 이유도 있지만 하얀색 가루와 기름은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소리를 주워 들어서 그런지, 잘 넣지 못하였다.
그래, 항상 이런 생각인 거지. 맛있는 것을 먹고 훅 갈 것이냐, 건강하게 먹고 오래 살 것이냐. 사실 오래 살 생각은 없다가도, 건강이 안 좋은 채로 오래 살기는 싫어서 자꾸 싱겁게 먹게 된다. (그럼 튀김은 왜 포기를 못하는 것인지.. 그냥 취향인가 보다 ^^)
껍질을 까지 않고 볶은 감자는 진리였다..! 물론 커리도 너무 맛있었다. 한때 인도 커리에 진심일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커리를 먹으러 일주일에 세 번씩 갔었다. 그곳 커리도 맛있었지만 코코넛유를 넣은 커리는 정말 맛있었다. 아무것도 죽이지 않은 아주 '인도적인' 인도 커리.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늘 그렇듯 한국어 수업(?) 시간을 가졌다. 캐롤은 한국어 배우는 것에 열정이 엄청나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는 대부분 한국어로 이야기한다. 캐롤이 모르는 걸 물어보면 영어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오늘은 캐롤라인이 궁금한 게 있다며 나에게 영어로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왜 네이버에 '봉지'를 검색하면 이상한 화면이 나와?"
캐롤은 '봉지'라는 단어를 몰라서 학교에서 근무할 때 컴퓨터로 검색을 해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웬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여자들의 이미지가 나와서 당황을 했다나. 어떤 여자는 검은색 편의점 봉투만 입고(?) 있었다고 했다. 하필이면 학교 교무실에서 검색을 했던 거라서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황급히 검색창을 껐단다.
나는 아주 수치스러워하며 왜 그런지 알려주었다. 왜 얼굴을 붉히는 것은 내몫이 되어야 하는 걸까? 캐롤과 베스는 내 이야기를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최근에 발생한 N번방 사건이 생각나서 함께 웃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