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링푸링 딸기 푸링과 냉이 부침개
나는 오늘부터 백수다. 그걸 축하하기라도 하듯, 밖에는 벌써 벚꽃이 폈다. 베스네 집은 학교 기숙사라서 그런지 가는 길에 벚꽃이 널려 있었다. 우리는 샤랄라 한 벚꽃에 한껏 들떠서 우리는 “너무 이쁘다!”를 남발하며, 깨 발랄한 고등학생 같이 굴었다.
베스의 일이 끝나고 우리는 함께 장을 봤다. 이번에도 우리 둘 다 장바구니를 갖고 왔다. 나는 그 와중에 꾸준히 모은 비닐봉지도 갖고 왔다. 채소를 골라 담을 때 항상 비닐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플라스틱 용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부디 곧 우리나라에도 플라스틱 프리가 오기를 바라며..
오늘 할 요리는 김치전과 비빔면, 그리고 냉이 튀김이다. 베스는 그저께 푸딩을 만들었다면서 후식으로는 그것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는 길에 푸딩 위에 올려 먹을 딸기를 샀다. 때마침 할인을 하길래 오늘 안에 다 먹어버리자고 다짐을 하며 산 딸기! 많이 익어서 그런지 딸기 냄새가 상큼하게 올라왔다.
김치를 써는 캐롤과 면 삶는 베스 그리고 김치전 부치는 나
오늘은 내가 자신 있는 종목이었기 때문에 역할을 나눠 주었다. 캐롤은 썰기 담당, 베스는 냉이 튀김 담당, 나는 면 삶고 김치전 부치기 담당이었다. 우리는 요리를 하며 대부분 한국어를 썼다.
“캐롤! 김치를 작게 썰어주세요.”
나는 ‘잘게’ 썰어달라고 하려다가 너무 고급 어휘라고 생각해서 ‘작게’ 썰어달라고 말했다.
“써러 주세요? 썰다? 썰어요, 뭐예요?”
하지만 캐롤은 ‘썰다’라는 동사도 몰랐다.
나는 동작으로 힌트를 주면서 캐롤이 스스로 무슨 뜻인지 생각하도록 했다.
베스랑 나는 캐롤이 그런 과정을 겪는 것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캐롤이 썰어주는 대로 김치를 넣고 밀가루랑 물을 마음 가는 대로 넣었다. 그리고 기름을 콸콸 부은 후, 김치전을 튀겼다. 나는 겉에 바삭한 식감을 좋아해서 일부러 김치전을 작게 만들었다. 나중에 맛을 보니, 아 맞다! 소금 넣는 걸 깜빡했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싱거웠다. 간장을 찍어먹은 덕분에 괜찮았지만, 나중에는 소금 넣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을 삶은 뒤, 차가운 물에 조금 씻었다가 접시에 담아 두었다. 근데 먹을 때 보니까 면에 기름칠을 안 해서 면이 떡처럼 되어있었다. 역시.. 나는 메인 셰프가 되기는 글러 먹었군.. 면에 얼음을 넣어둘까 했는데, 귀찮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요리는 정성이라는데, 나란 인간은 ‘귀찮으니까 패스’라는 마인드로 사니까 요리가 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김치전은 나름 예쁘게 데코를 했다.
캐롤은 열심히 썰었다. 어느 정도 크기로 썰어야 하는지 물어보는 캐롤의 질문에 나와 베스는 동시에 대답했다.
“You can just slice like..”
“그냥 큼직하게…”
나는 아삭한 식감이 좋던데.. 아마 큼직하게 써는 내 성격 때문에 내 입맛이 그렇게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의견을 철수하고 비빔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비빔면에는 오이가 길쭉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치전을 부치면서 캐롤이 썬 오이를 보니까 부채 모양으로 아주 얇게 썰려 있었다.(?)
나와 베스의 의견을 반반씩 반영한 건가??ㅋㅋㅋㅋ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냥 넘어갔다.
어쩌다 보니 소스를 만드는 것도 캐롤 담당이 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에 캐롤이 소스를 잘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캐롤이 만든 소스를 맛본 후에는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베스는 냉이 튀김을 10초 만에 만들 수 있다면서 계속 빈둥거리다가, 우리가 요리가 끝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계속 빈둥거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접시 두어 개 정도 설거지를 하며 주변정리도 하고, 노래를 틀어서 우리의 노동 능력치를 북돋아 주었다.) 나였으면 튀김옷을 미리 만들어놓고 냉이도 미리 그 안에 담가 놓았을 텐데.. (정말 효율적으로 사는 게 너무 좋나 보다..)
나는 베스가 냉이 튀김을 만드는 동안 밥상에 접시를 놓고 젓가락을 놓았다. 전을 찍어먹을 간장도 만들었다. 10초 정도 걸린다던 베스는 10분이 조금 넘어서야 냉의 튀김을 완성했다.
아까 베스와 함께 장을 볼 때, 냉이는 세 개 정도면 되지 않을까?,라고 했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혹시 몰라서 6개를 샀는데, 너무 양이 많아졌다. 탑을 쌓아 올릴 정도로! 하지만 너무 맛있어서 그마저도 다 먹어버렸다. 냉이 튀김이 이렇게 맛있는 거라니! 언젠가 다시 해 먹고 싶다. 꼭!!
그리고 양파도 볶았다. 여기서 나와 베스의 의견은 다시 갈렸다. 나는 양파를 익혀서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삭한 식감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베스는 양파의 달달함이 좋다며 푹 익도록 볶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양파가 너덜너덜해지도록 볶았던 거구나.. 이번에도 나는 그냥 베스의 의견을 따랐다.
캐롤은 김치전을, 나는 비빔면을, 베스는 냉이 튀김을 각자 맛보았다.
“음~”
우리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감탄했다.
“우리는 너무 잘했어”
늘 그렇듯 칭찬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캐롤의 한국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캐롤이 그동안 나에게 보내준 일기에 대해서 베스에게 말해주는 시간이었다. 지난주 이후로 캐롤은 나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서 보내주었고, 나는 매일 캐롤의 일기를 첨삭해주었다. 캐롤은 글 쓰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쉽다고 했다. 그래도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말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베스와 나는 캐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응원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우리는 추억팔이를 하기 시작했다. 베스와 캐롤은 어렸을 때 보던 애니메이션을 언급하며 둘이 까르르 웃었다. 미국 애니라고는 심슨과 스펀지밥 밖에 모르는 나는 그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정한 그 둘은 나에게 그들이 봤던 애니 중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바로 ‘검비’였다. 점토로 만든 애니라고 했다. 나는 그래서 “패트와 매트는 알아!”라고 했지만 그 둘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만약 미국 친구와 친해지고 싶다면 검비를 보고 아는 척을 해보시길!
우리는 거의 두 시간 정도 떠들다가 디저트를 먹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설거지 담당이었다. 나는 열심히 설거지를 했고, 캐롤은 열심히 딸기를 먹기 좋게 잘랐다. 베스는 열심히 뒷정리를 하고 푸딩을 꺼냈다.
딸기 초코 푸딩은 정말 맛있었다. 만드는 방법도 정말 간단하다고 했다. 이런 거라면 정혈 기간에 꼭 먹어야 하는 필수 디저트였다. 나중에 나도 꼭 해봐야지~!
우리는 디저트를 먹으며 수다를 이어갔다. 나는 늘 그렇듯 주말에 다들 뭘 할 거냐고 물어봤다. 평소라면 나는 주말에 일을 하니까 그냥 별 뜻 없이 물어본 거였겠지만, 나는 이제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내일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캐롤은 닌텐도를 하다가 수업 준비를 한다고 했고, 베스는 술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했다.
“수업 준비는 학교에서 해~!!”
주말에도 수업 준비를 한다는 캐롤라인의 말을 들은 베스는 캐롤을 한껏 나무랐다.
“저는 계획이 없어요..;(“
“계획? 계획이 뭐예요?”
나는 캐롤과 한껏 한국어 수업을 펼쳤다. 결론은 이랬다.
“그래요! 그럼 우리 내일 같이 놀아요!”
나는 캐롤에게 우리 동네로 놀러오라고 했고, 캐롤은 알았다고 했다. 그 틈을 타서 언제가 괜찮냐고 하니까 캐롤은 주말마다 좋다고 했다. 나는 속전속결로 내일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딸기 초코 푸딩을 끝내고, 내일을 기약하며 식사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