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 가는 날

아빠를 기록하다

by 글쓰기바라봄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위한 기록

지금의, 과거의, 앞으로의

아빠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한 기록


아빠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초등학교때까지 아빠는 건어물가게를 운영했다. 건어물가게는 마른 오징어, 쥐포, 오징어채, 팝콘 등을 파는 가게였다. 주로 아빠의 가게의 고객들은 지역사회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곳들이 많았다. 술집에 가면 기본적으로 나오는 마른 안주 등을 납품하는 일을 주로 하시는 듯했다. 납품만 하던 아빠도 그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초등학교 무렵부터는 여수와 순천에 술과 안주를 파는 호프집을 오픈하고 운영하게 되었다. 안주가 맛있었는지, 가게 전략이 좋았는지 장사가 참 잘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어물 단칸방에서 시작한 우리집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아파트로 이사갈 수 있었고, 아빠가 모시던 차도 꽤 좋은 차로 바뀌었다. 우리집은 넉넉해 졌지만 아빠와 엄마는 참 바빴다. 여수와 순천에 2개의 가게를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아빠는 거의 매일 출퇴근을 했고, 엄마는 순천에 있는 가게를 챙기는 걸 도맡아하셨다.


자영업자로 산다는 것은 365일이 바쁘다는 것을 난 아주 어릴 적 부터 알게 되었다. 아빠는 매일 바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말에는 더 바쁘셨고, 명절에는 더 바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쉬는 날 우리 아빠는 바쁘게 일하며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릴적부터 가족 전체가 함께 여행을 가는 건 하늘에 별 따기 였다. 당일 치기로 가까운 곳에 가는 것은 가게에서 일하는 삼촌들에게 맡기고 잠시 다녀올 수 있었지만, 아빠는 일하고 엄마랑 우리만 서울 나들이는 가능했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어딘가에 여행을 가는 일은 참 드물었다.


다행히 당시에는 여행 문화가 그다지 자리 잡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끔 하루 정도는 여기저기 다녔었고, 길게 못갔을 뿐 아빠 엄마는 최대한 시간을 내서 우리와 함께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길게 여행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아빠는 어릴적 초등학교에서 하는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 프로그램이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다. 본인이 직접 여기저기 데리고 길게 가지 못하는 걸 그렇게 라도 경험시키고 싶으셨던 듯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와 함께 일하시는 분이 부산에 초대를 해주는 일이 생겼었다. 지금도 경상도에 위치한 부산과 전라도에 위치한 여수,순천의 거리가 멀지만 내가 어릴적에는 더 멀었다. 당일 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정말 오래만에 몇박몇일로 여행을 가는 일정이 만들어져서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산에 처음 가는 건데, 좋은 호텔도 예약해 주시고 관광도 시켜주신다하니 엄청 들떠있었다.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가게 되던 당일 아침이었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고 이동할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태풍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좀 강한 태풍이 오고 있어서 이동을 자재해야 하고 태풍의 길목이 부산이라는 이야기였다.


결국 우리 가족의 여행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타른 지역에서 부모님과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우리 가족은 엄마가 아침에 싸주신 김밥을 집에서 티비를 보며 먹었다. 참 오래전 기억인데 그날이 잠깐잠깐 떠오른다.


그 이후로도 몇 번 그렇게 함께 여행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는데, 여러번 이런 저런 이유로 무산되었었다.우리 가족만의 여행 머피의 법칙 같은게 생겨버렸다. 난 그게 아빠 탓이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바빠서 아무때나 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난 자영업에 대해서 그렇게 긍정적이지 만은 않았다. 돈을 많이 벌려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다는 것을 온 몸의 세포로 배웠기 때문이다.


삶에 치여 가기 어려웠던 가족 여행, 어쩌다 잡히 여행마져도 가기 어려웠을때의 그 아쉬움, 어린시절 그 강력한 기억은 사업하는 것은 쉽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질적으로 보내기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듯하다. 30년이 지난 후 40대가 된 동생과 나는 남들 쉴때 쉬고, 남들 여행갈 때 여행가는 그런 일을 하며 살고 있다.


5일을 일하고 2일을 쉬는 주 5일제가 시행된지 약 20년이 흘렀다. 5일을 일하고 2일을 쉬는데도 한 주가 버거운 순간들이 많다. 더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조금 길게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나면 그 다음 한주가 빡빡하고 힘든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지금의 삶에 아빠의 삶을 한 번 얹어서 생각해본다. 365일 단 한 순간도 쉴 수 없는 아빠의 삶, 어린시절 가난함을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 정말 최선을 다했던 아빠의 삶. 얼마나 고단하셨을지, 얼마나 쉬고 싶으셨을지, 얼마나 멈춰 서고 싶었을지..


아빠의 치열한 자영업으로서 살아남은 시간 덕에 나는 얼마나 편안하게 나의 꿈을 꾸고 살아왔는가? 조금 더 배웠다가 불합리하고 보수적이라고 아빠를 얼마나 타박하고 살아왔는가? 가족여행 한 번 제대로 간 적이 없다고 얼마나 투덜댔는가? 인간의 욕심이란 참 끝이 없다.


아빠의 가족여행은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난 후, 나와 동생네 가족과의 여행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시작되었다. 인간의 삶이란 참 아이러니 하다. 돈을 많이 벌때는 돈을 쓸 시간이 없고, 정작 시간이 많아졌을 때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 그런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아빠라는 존재.


아빠가 어쩜 지금 쉴 수 있는게 다행인 것 아닌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내가 걱정 안하며 잘 지내셨음 하는 것도 나의 욕심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결혼하고 일하고, 또 일하고 그랬던 아빠의 삶에 없었던 주말과 명절, 휴식시간. 어쩜 아빠는 지금 다 몰아서 쉬고 있는게 아닌가.


참 애썼다 아빠,

참 고생했다 아빠,

참 힘들었겠다 아빠,

편히 쉬어도 괜찮아 아빠....


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었음 좋겠다. 나는 가족여행을 가고 싶었던 어린시절에도 박하고 욕심많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딸이다. 이 글은 아빠에 대한 기록이자 나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다. 저 말들을 진심을 담아 건네 줄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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