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흔들릴 때가 있지만
처음 일을 시작할 땐, 계약직이나 정규직이나 상관없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 일하든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일과 격차가 있었고 그 안에서 고민과 갈등이 많았다. 퇴근 후 글을 쓰고자 했지만, 원활한 회사 업무를 위해 틈틈이 운전 연습을 하고 직업상담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글을 쓰지 못하니까 올해 안에 첫 책을 내기로 목표했던 것에 조급함이 생겼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왜 계속 계약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자괴감과 자기 연민에 빠졌다. 아마 주변에서 하나둘씩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랬던 것 같다.
공무원. 누가 봐도 미래가 보장되어있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보인다. 공무원 연금이 과거보다 줄어서 이전보다 직업 선호도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경쟁률은 치열하다.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시험을 통과하고 최종 면접에 당당하게 합격해서 공무원이 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와, 대단하다!”하고 감탄사가 나온다.
그에 비해 나는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데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첫 직장부터 계약직으로 일한 것이 잘못한 걸까, 나는 왜 두 번째 직장도 계약직을 하고 있을까. 스스로 질책하기 시작했다. 어떤 형태로 일하든지 상관없다는 처음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남과 비교하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나도 한번 공무원 준비해봐?’
전혀 관심도 없던 직업이었는데,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남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직업을 가지려고 집착하고 있었다. 공무원 되는 법, 후기, 브이로그, 현실 가능성, 장단점 등 닥치는 대로 영상과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다. 맹목적이었다.
행정직은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서 패스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능성이 높은 직렬은 직업상담사 또는 사회복지 공무원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나왔다. 그런데 그마저도 뽑는 인원과 경쟁률을 비교했을 때 최종적으로 사회복지 공무원이 나왔다. 사회복지가 하기 싫어서 그만뒀는데 돌고 돌아서 또 사회복지? 돌아버리겠다. 막막한 현실에 헛웃음만 나왔다.
그런데도 공무원을 놓지 못하고 계속 고민하다가 멘토를 찾아갔다. 공무원이 되고 직장이 안정적이면 좋을 것 같다. 글 쓰는 공무원도 많이 봤다고 열심히 떠들었다. 멘토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어떤 일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 너는 작가기 때문에, 모든 건 글감이 된다. 지금 동기는 잘못됐다고 하셨다.
제 동기가 잘못됐다고요? 처음엔 인정할 수 없었다. 내 동기가 어디가 어때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공무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솔직한 나의 심정을 마주하니 진짜 되고 싶다기보다 남들이 알아주는 ‘타이틀’이 갖고 싶었던 것 같다. A는 이름 있는 대학원에, B와 C는 공무원 합격, D는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주임이나 대리를 달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계약직 말단 신입이었다.
스물여덟. 내일모레면 서른인데, 대단한 성공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질문에 한없이 작아졌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고 간격을 메꾸려면 공무원이 되어 글을 쓰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멘토가 던진 질문을 통해 내가 진정 공무원을 원하는지 생각했고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프리랜서 작가였다. 공무원과 정반대인 프리랜서를 하고 싶었다. 자율적으로 나만의 일을 창조하고 싶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글을 쓰면서 대중을 상대로 강의도 하고 작품을 남기면서 내가 가진 재능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빠져있던 나를 발견하고 인정하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좋은 내가 아니라 내가 나를 볼 때 뿌듯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을 따라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건 내겐 정답이 아니었다. 그렇게 공무원 고민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초심을 다잡으며 직업상담 자격증 공부를 이어갔고 1, 2차 시험에 합격해서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책 작업을 시작하여 혼자 힘으로 12월 말에 첫 책도 출간했다.
계약직이 끝날 때쯤, 회사에서 좋게 봐주셨는지 정규직을 제안해주셨다. 부장님은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는 게 보인다며, 주변 사람들도 선생님과 오래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잡아두기 아깝다고, 능력을 키워서 좋은 곳으로 이직하라고까지 말씀해주셨다. 그 말은 성과금보다 내게 큰 원동력이 됐다.
가끔은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내가 세워놓은 기준보다 다른 사람의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며 흔들릴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질문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묵묵히 나만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드니까.
커버: Photo by JESHOOTS.COM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