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도전
뉴질랜드에서 비행기로 3시간 떨어진 섬나라 바누아투. 이 나라에 대해 처음 들어보신 분들도 많을 것 같아서 어떤 나라인지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오세아니아의 섬나라로 수도는 포트빌라(Port Villa)다. 화폐로는 바투와 물자 화폐가 통용되며, 번지점프가 유래한 곳이기도 하다. 국토 면적은 약 12,000㎢, 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33만 명, 기독교가 80% 이상인 기독교 국가다. 사용하는 언어는 프랑스어, 영어, 비슬라머다. (출처: 나무위키)
뉴질랜드에서 다녔던 교회는 그곳을 12년째 방문하며 선교하고 있었다. 기독교 국가에 선교를 한다는 것이 처음엔 조금 의아했는데 개발도상국과 같은 그 나라에 학교를 세우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세우고 나라와 민족을 두고 말씀과 기도로 섬기는 귀한 사역을 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선교여행을 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이미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데 굳이 여기서 또 비행기를 타고 돈과 시간을 들여서 다른 나라로 나간다는 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구와 여행을 취소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여유가 생겨서 선교여행을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이 와중에 교회 청년부는 무언극과 영어 찬양을 준비해 가기로 했다. 무언극이라니. 해본 적도 없거니와 연기를 한다는 게 너무 오그라들고 싫었다. 나는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청년부 회장 언니의 설득과 같이 가는 청년들이 전부 하기로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준비하게 됐다. 영어 찬양도 쉽지 않았다. 가사를 보고 하는 거면 낫겠지만, 영어 가사를 외워서 MR 반주에 직접 불러야 하기 때문에 막막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영어 발음도 꼬이고 초라한 영어 실력이 부끄러워서 기가 죽었다. 다 같이 부르는 거긴 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서 립싱크를 할 수 없었고 목소리를 크게 내야 했다.
영어 찬양은 연습을 반복하니 좀 나아졌는데, 무언극은 무대에 서는 그 순간까지 어려웠다. 사실 내가 맡은 역할은 그리 비중 있는 역은 아니었다. 게다가 더블캐스팅이어서 남들이 무대에 두 번 서야 하는 것을 나는 한 번만 서면 되는 일이라 부담도 적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더블캐스팅의 단점을 발견하게 됐다. 일단 같은 역할을 두 명이 하게 되니까 나부터 비교하게 됐다. 그 언니는 나보다 연기를 더 잘했다. 나는 그에 비해서 어딘가 어설펐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부분을 느꼈기에, 나에게 이 부분을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은 바누아투에서 무대에 서기 전에 리허설을 하는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 얘기를 듣다가 울컥해서 같이 무언극을 연습하는 청년들 앞에서 울어버렸다. 나도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 비교당하고 싶지 않았고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았다.
전날에는 무대에서 영어 찬양을 같이 부르면서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 기뻤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작은 피드백도 비교당하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이 아파하는 상반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성장했다고 생각하면 퇴보한 것 같고, 치유됐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상처를 발견하고 아파하다니. 나는 왜 이럴까 싶었다.
그때 나를 위로해 줬던 친구는 중국인 언니였다. 벤치에서 바람을 쐬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하나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얘기였다. 평소에도 서툰 나의 영어를 잘 받아주고 깊은 속 얘기도 나눌 정도로 친해진 언니여서 나를 향한 애정 어린 말에 진심으로 위로를 받았다.
같이 무언극을 준비했던 청년들도 갑작스럽게 쏟은 나의 눈물에 당황했을 텐데, 비교하는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고 원래 연습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다독여주었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무대에 섰을 때, 전보다 평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결과가 어찌 됐든 상관없다고, 이 순간을 그저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만큼, 못할 수 있는 부분도 인정하고 함께 준비해서 공연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되새겼다. 좀 못하면 어때.
돌이켜보니 그동안 나는 잘했을 때만 나를 겨우 인정했고, 못하면 질책하고 미워하기 바빴다. 결과가 잘 나왔을 때조차 기쁘면서도 받아들이는 게 어색하다고 할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여전히 못난 부분은 밉고 싫지만, 이 사건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조금은 인정해 주는 시간이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의 다양한 모습도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막연하게 무섭다고 느꼈던 흑인도 나의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덕분에 7박 8일을 보냈던 바누아투는 내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곳에서 일정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보낼 때, 첫 스노쿨링도 해봤고 바누아투 소녀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놀러 갔을 때 첫 다이빙(그곳에선 점핑이라고 한다)도 도전할 수 있었다.
첫 다이빙을 했을 땐 정말 무서웠다. 발이 닿지 않은 깊은 곳에선 수영을 못하는데 무작정 뛰어내리고 허우적거리며 “Help me! Help me!”를 외쳤다. 그 친구들은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인 것을 알고 한 명이 뛰어들어 구해줬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뛰어내릴 수 있었을까 싶은데, 누군가 구해줄 것을 믿고 용기를 냈다. 그 믿음과 용기로 나라는 사람의 벽을 뛰어넘어 도전할 수 있었다. 물을 좀 먹긴 했지만 멋진 시도였다. 그때를 추억하며 웃을 수 있으니 뛰어내리길 잘했다 싶다.
실패가 두려울 때, 때론 너무 많은 생각보다 일단 그냥 저질러 봐야겠다. 못하면 어떤가. 그조차 멋진 도전이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