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6시간의 비행시간, 뭘할까 고민한다. 한두번의 식사가 나오면서 보통은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게 된다. 우연치않게 보게된 영화 그것이 가슴뭉클하게 한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삶이 멋진 삶일까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돈이 많고 승진을 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가슴 벅찬 일을 하고 있는지의 질문이다. 항상 그럴수는 없지만 한달에 한번 가슴벅찬 일하나쯤은 있으면 어떨까 그게 무엇이든..
6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사람들은 대개 몇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선택해 무심코 시청한다. 기내식이 두어 번 제공되는 동안, 별다른 고민 없이 스크린을 바라보다 보면, 가끔 예상치 못하게 마음 한구석을 울리는 작품을 만나곤 한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진심 어린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있는가? 스토리가 대단히 혁신적이거나 특수효과가 압도적인 영화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속 등장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것이 그의 삶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 지를 지켜보다 보면, 우리 역시 저마다의 삶 속에서 ‘멋진 삶’이란 무엇인지 사색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멋진 삶이란 단순히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풍요를 통한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돈과 안정성, 명예, 영향력 같은 요소들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가슴을 뛰게 하는 순간은, 그런 외적인 조건을 초월하는 내면적 에너지에서 비롯되는 때가 많다. 어떨 때는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친절을 베풀거나, 처음 도전하는 프로젝트에 몰두하거나, 혹은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벽을 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이상하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가슴 벅참’이 솟구치곤 한다.
우리는 그 ‘가슴 벅참’을 ‘멋짐’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가슴 벅찬 순간을 경험하는 빈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런 수간을 찾아 나서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매일 아침 명상과 운동을 통해 내면적 균형을 찾으며, 그 과정에서 미묘한 만족감과 기쁨을 느낀다. 또 다른 이는 한 달에 한 번쯤은 전혀 다른 분야의 취미나 봉사활동, 혹은 새로운 아티스트의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신선한 자극을 얻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길을 찾아내고, 거기서 만난 소박한 서점의 주인과 나누는 짦은 대화에서 소소한 희열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한 달에 한 번쯤 가슴 벅찬 일을 한다는 상상은 어떨까?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남들이 보기에 대단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가슴 속에 느끼는 그 ‘뜨거움’이다. 늘 그렇진 않겠지만, 한 달이 라는 시간 속에서 한두 번의 진심 어린 선택, 색다른 경험, 의미 있는 관계 맺기를 통해 삶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이 단조로운 일상에 색을 더하고, 멋진 삶으로 가는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무심코 틀어둔 영화가 그런 인식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등장인물들이 극한 상황에서 서로를 돕고,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갈등을 뛰어넘어 함께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인생에서도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고, 나아가 내가 목표했던 일에 조금 더 의지를 불어넣을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사실 삶은 대부분 평범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출근, 퇴근, 식사, 잠, 대화와 반복되는 업무들. 하지만 이 일상적인 무늬 사이에 작은 빛을 심어둘 수 있는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한 달에 한 번, 가슴 벅찬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이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달에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봉사활동을 지원해본다거나, 다름달에는 주변 지인들이 만든 예술품 전시에 찾아가본다거나, 아니면 평소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스포츠나 악기를 시도해보는 식이다. 그 경험이 성공적이든 아니든, 그 순간의 진심 어린 몰입과 새로운 시도 자체가 충분히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수 있다.
이런 작은 실천은 우리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킨다. 매달 한 번씩 자신에게 던지는 도전은 결국 연간 열두 번의 심장 뛰는 순간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그 열두 번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태도를 형성한다. 대단한 업적을 쌓지 않아도, 어느덧 ‘멋진 삶’에 조금 더 가까워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루하루가 단순히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의미로 재구성된 서사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마도 멋진 삶이란, 그런 작은 가슴 벅참을 꾸준히 수집해나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출반점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순간, 6시간의 비행 속 나를 둘러싼 일상에서, 혹은 가벼운 상상과 결심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번 달에는 무엇으로 내 가슴을 뛰게 할까?”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조그마한 행동 하나를 실천하는 순간, 평범했던 하루가 어느새 ‘멋진 삶’을 향한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멋진 삶’이라는 말을 곱씹기 시작했다. 잘 차려 입은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도시의 직장인들을 보며, 그들이 멋진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 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생이 ‘멋진 삶’의 동의어라면, 높은 자리, 두둑한 연봉, 바쁜 일정이 만족스럽게 이어져야 할 텐데, 왜 마음 한구석에는 늘 허전함과 갈증이 생길까? 반대로, 내면적으로 충만하고 여유로우며, 자신에게 진정한 의미를 주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멋진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왜 사회적으로는 대단한 명성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까?
나는 샐러리맨이다. 안정적인 직장에 몸담고, 시키는 일은 책임감있게 처리하지만, 굳이 적극적으로 야근하거나 눈에 띄게 무언가를 만들지는 않는다. 내 커리어 초반, 회사는 내게 그리 많은 걸 요구하지 않았다. 연봉은 평균 수준이었지만, 회사는 안정적이었고, 내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상을 제공해주었다. 퇴근 후에는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때때로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삶의 여유를 느꼈다. 일은 일대로, 내 삶은 내 삶대로 굴러가는 나날이었다. 이 시기에는 ‘멋진 삶’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긴 했지만, 내면적인 충만함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고,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주말에는 가슴 벅찬 무언가를 도전해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기회가 생겼다. 임원이라는 자리로 갈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당연히 연봉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사회적으로 ‘성공’이라고 불릴 만한 위치로 나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기회가 매달 내게 여유로운 주말과 저녁 시간을 빼앗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더 많은 책임, 더 높은 목표, 더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서 마음 편히 여유를 누리던 시절을 추억해야만 할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성공과 내면적 충만함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듯한 상황이었다.
왜 둘 다 어렵게 느껴질까?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이면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정말로 연봉이 오르고, 지위가 높아지면, 회의와 보고, 의사 결정과 책임감이 폭증하고,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내면을 돌볼 기회가 희박해진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느껴지고, 귀한 주말마저도 머리속에서 업무가 떠나지 않는다. 반면, 내면적 충만함에 집중하려면, 대개 경제적 풍요나 업적 쌓기 대신 자기만의 속도로 살기 마련이다. 이것이 당장 삶을 힘들게 하진 않지만, 사회적 스포트라이트와 경제적 보상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둘 다 하면 좋겠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도, 내면적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 그러나 현실은 그런 이상향을 실현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고민하는 이 선택의 순간에, 과연 어느 방향이 ‘멋진 삶’으로 나를 인도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고민 끝에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과 지위, 명예가 나를 진정 행복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일상의 여유와 내면의 성장이 더 소중한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금전적인 부족함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 ‘가슴 벅찬 순간’이 별로 없던 시절이 더 공허하게 느껴졌다. 회사일은 안정적이었으나 그 안정감 속에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나는 늘 내면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찾거나, 작은 도전을 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성공을 마다할 것인가? 그 자리에 오르면, 새로운 도전을 통해 내가 몰랐던 능력을 발견하고, 성공을 통해 가슴벅찬 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책임감과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 다잡고, 틈새 시간을 활용해 내면을 충실히 하는 전략을 마련할 수도 있다. 바쁜 삶이라고 해서 무조건 내면의 충만함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어렵고 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는 나에게 두 가지 삶의 양식을 융합할 수 있는 도전을 준다고도 볼 수 있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내면적 의미와 충실함을 놓치지 않으려면, 나는 더욱 의식적으로 내 삶을 설계해야 한다. 출근 전 30분이라도 명상을 하거나, 한 달에 한 번 가슴 벅찬 경험을 계획하며, 업무에 몰입한 후 짧은 휴식 시간에 책을 읽고, 주말 중 하루를 나만의 성장 프로젝트에 쏟아부을 수도 있다. 바빠진 삶 속에서 내면의 충만함을 유지하는 것은 새로운 레벨의 자기관리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멋진 삶’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멋진 삶’이란 양극단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율하고 배치하는 과정일 수 있다. 사회적 성공이라는 조명 아래에서,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박수를 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면의 어두운 그늘을 등한시하지 않으려면 더 큰 노력과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반대로 내면의 충만함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적 인정이나 경제적 풍요에서 멀어질 수 있지만, 그때 내 삶은 오롯이 나 자신이 만든 의미로 가득 찰 것이다.
어떤 선택이 정말 멋진 삶인지,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고, 그 답을 실천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길을 택했다면, 그 속에서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내기 위한 의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내면의 충만함을 택한다면, 그 속에서 다른 이들이 말하는 ‘성공’ 대신 나만의 가치와 의미로 충만해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멋진 삶이란 결국 내 선택을 통해 나를 발전시키고, 나를 만족시키는 과정의 다른 이름이다. 어느 길을 가든, 내가 내 인생의 주체로 서서, 내내 고민하고 조율하며, 가슴 벅찬 순간들을 만들어나간다면,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멋진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