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의 자기 방어기제
은행나무 열매가 길가에 떨어져 있다.
살금살금 피해서 간다.
자칫 잘못 밟았다간 꼬린내가 집까지 쫓아올 테니까.
옆집 담장에 곱게 핀 장미에
조심조심 코를 대어 본다.
섣부르게 잡았다간 가시에 찔려 피를 볼 테니까.
위기에 처한 도마뱀은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제 모습을 바꾸고
저마다 하나쯤 자신을 지킬 무기 하나씩 갖고
아무것도 없을 때는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기까지 하는 것은 그들의 본능이자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사람은 어떤가,
상처받을까 봐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버림받을까 봐 먼저 버리기를 택하고
약해보일까 봐 강한 척 성격을 부풀리고
사실은 관심받고 싶으면서 삐딱선을 타는 사람들.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일들이 되려 자신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임을
모르는 무지랭이.
나도 모르는 마음을, 함부로 엉뚱하게 표현하면서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어리석음.
조심스레 마음의 껍질을 벗겨보자.
정성스레 마음의 속살을 벗겨보자.
가만히 그 안의 씨앗을 들여다보자.
모습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 씨앗은 모두 하나일 것이다.
사랑.
사랑이라는 씨앗을 품고 그 씨앗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엉뚱한 열매가 되어간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일도,
옆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내 일부를 자르는 일도 없이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