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국경을 넘어보자 Rainbow Bridge (1)
제니는 나의 영어선생님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업무용 영어 작문 교정 담당이었다. 내가 쓴 ‘Draft(초안)’는 ‘Can you check my English?’란 질문과 함께 그녀에게 전달되었고, 그녀는 세심하게 내 글을 뜯어고쳤다. 그녀를 통해 ‘공손한’ 영어를 익혔다. 직진 일색이던 내 문장에 ‘Would’ 라거나 ‘Could’ 또는 ‘I wonder’ 같은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같은 뉘앙스가 들어가 공격성이 줄어들었다. 영어를 서바이벌로 익혀 업무용 언어에 약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회사 메일로 업무 요청 대신에 ‘이거 하세요’ 같은 지시어를 쓰거나 ‘넹’같이 입말을 남발하는 것과 비슷했을까. 하여튼 내 영어는 살아남는 게 목적인 멋모르는 단계였음엔 틀림없다. 제니는 그런 내 영어를 다듬어주면서 ‘이러는 편이 나을 것 같다’라고 늘 살포시 답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나이스한 외국인’의 표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살기는 너무 답답하다며 고개를 젓곤 했는데, 아마도 빨리빨리의 민족인 한국 사람이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에 살 때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철저히 능력 위주로 평가받는 곳, ‘캐나다인들은 젊잖은 데 답답해’란 이미지가 퍼져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일하며 만난 사이였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운전해서 가면서 제니는 드디어 '팀 호튼’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캐나다의 던킨도너츠 ‘Tim Hortons’은 이제 한국에도 있지만, 당시엔 오로지 캐나다에만 있었고, 제니에 따르면 너무 달고 무른 미국 도넛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것이었다. 미국 사람 특유의 ‘과시’ ‘부풀림’ ‘자본주의 미소’처럼 캐나다인은 ‘절제’ ‘예의 바름’ ‘우아함’ 같은 캐나다인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Queen’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영어가 꽤 익숙해졌던 시점이었는데도 아마 캐나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대충 흘려들었던 걸 더듬어보면, 영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미국은 독립했고 캐나다는 영국을 도와 독립을 반대했으며 아직 왕실이랑 친하다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 속으론 ‘성공하기엔 미국이 낫겠군’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곧게 뻗은 길을 5시간 넘게 달리며, 새삼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다는 게 실감이 났다. 제니는 독박으로 운전을 맡았는데도 집으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어딘가 들떠 보였다. 제니의 고향은 국경 너머 조금 더 가면 있는 벌링턴이라는 곳이었고 제니의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며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할 예정이었다. 제니는 이번에 보면 알겠지만, 미국 쪽보다 캐나다 쪽 나이아가라 폭포가 훨씬 대단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짧은 휴가 같아 보이는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은 비자에 도장을 받는 거였다. 둘 다 미국에 여행 비자로 입국했기에, 다시 취업비자로 바꾸기 위한 소위 ‘Visa Run’이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준비물 여권 외에 짐은 단출했고, 마음은 마냥 신났다.
과시를 싫어해서 작은 차를 선호하는 캐나다인 답게 제니의 차는 현대 세단이었다. 차종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소나타보다 작았던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달리 캐나다 차는 마일이 아니라 한국과 같게 km를 단위로 써서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가 그 차를 몰고 캐나다로 갔었던가?
그건 불분명하다. 아니,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 차가 아니라 제니 이름으로 빌린 렌터카였던 것 같다.
어쩌다가?
내가 제니의 차를 부쉈기 때문이다.
“난 다치지 않았어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돼요!”
조수석 문이 우그러지는 사고를 당한 후 조수석 문을 열며 제니가 한 첫 말을 기억한다. 보험이 없다. 차는 보험이 들어있지만, 사람은 보험이 없으니, 병원에 갈 수 없다 그런 내용이었다. 제니는 자신이 멀쩡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서서 양팔을 번쩍 들었다.
내가 제니 차를 운전해서 제니를 미들타운의 기차역에 데려다주려던 길이였다. 지금은 한국에도 종종 있는 ‘비보호좌회전’에 대해 아주 얕은 이해만 있던 시절 마주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좌회전을 꺾어버렸다. 직진으로 달려오던 차는 조수석을 꽝 박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이라면 좌회전이 직진에게 순서가 밀리지만, 미국의 비보호좌회전에서는 좌회전과 직진이 동등한 책임을 진다. 두 차량 소유자는 결국 각자 자신의 차를 해결하기로 빠른 합의에 이르렀다.
지금도 그때 공포에 흔들리던 제니의 눈동자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미국의 병원비는 악명이 높았고, 진찰 한 번만 받아도 아마 몇백은 나왔을 것이다. 부서진 그녀의 찻값에 맞먹는.
그런 미국이어서였을까.
조수석 문짝만 갈면 될 것 같았던 수리비는 폐차비용보다 비싸다는 견적이 나왔다. 차를 폐차할래, 아니면 고칠래 중에서 제니는 폐차를 택했다. 그렇게 나의 Total loss #2 기록이 생겼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우리가 국경으로 갔던 거로 기억한다. 가끔 목소리가 떨릴 때가 있었지만, 사고 후 제니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도 차에 대해 얼마간 보상을 하기로 했던 것 같다. 그땐 문제해결을 너무 닥치는 대로 해서 사실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게다가 차를 두 대나 부숴 먹기도 했고.
(2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