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 아직도 적절한 취미가 없다. 등산을 즐기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화초 키우는데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은 좋지만 이상하게 독서모임은 왜인지 부담이 돼서 망설이기만 할 뿐 시작이 안된다. 아마도 내가 독서 편식이 심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뭔가 명상도 되고 일종의 자기 수양이 될 만한 그런 게 뭐가 있을까? 배움의 즐거움, 적당한 난도가 있는 성취의 쾌감... 그림은 열망과 환상만 있고 역시 실천이 어렵고. 그래서 고민하고 찾다 찾다가 캘리그래피를 생각했다.
내일 배움으로 신청한 캘리 입문 과정은 3개월, 매 시간이 3시간씩이다. 제법 긴 시간.
짧은 문장 쓰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써낸 글자가 인상적이었다.
"울어봐서 웃을 수도 있는 거야."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올라온 목소리!
내가 치유되고 있음을 한 번씩 느끼는데, 바로 그런 순간 같았고 그럴 때마다 매 순간 기쁘고 감사하다.
며칠 전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과 봄나들이 삼아 얼굴 한번 보자 하고 공원을 찾았다. 바로 옆이 계곡이라 계곡 따라 산책하기가 매우 좋은 곳이었다. 전망대에 잠시 올랐다가 내려와 나물 비빔밥을 먹고, 커피를 사서 계곡 바위 위에 앉아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살아온 인생의 그래프, 그 안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그 아픔의 매듭이 자기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인생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자신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무색할 만큼 놀라운 인생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아픔이 결국 이토록 깊은 자기 성찰과 자기 탐색을 하게 만들었고, 자기 이해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계곡물에 자신의 서사를 실어 내려보내고 우리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이 오십에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60전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안다면, 그거 성공한 인생 아닐까?
그녀는 이미 성공한 인생으로 보였다.
상처 많은 사람이 자기 수용과 자기 돌봄을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에겐 향기가 난다. 자기 틀을 벗어내고 삶을 초월한 은은한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