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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Jun 28. 2024

25. 오늘은 살지 못한 누군가의 내일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을 깨는 습관이 있다. 

요즘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30분짜리 모래시계를 세워놓고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남편의 큰 형님이자 내겐 큰 시숙님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고 바로 다음 날 부고가 그리고 1박 2일 만에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더니 그 흔적이라곤 그저 조그마한 항아리 하나라니.


그토록 삶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용을 쓰고 기를 쓰며 살아가지만 결국엔 항아리 하나. 더 충격인 것은 한 사람의 존재가 지워지는 데 직계는 불과 2박 3일, 친척에겐 1박 2일뿐이라는 것. 어제 눈으로 보았던 사람이 오늘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생각할수록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 삶이고, 언제라도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순서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래시계와 커피 한 잔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물며 이어가는 사색의 시간.

만약에 내게 주어진 생의 시간이 지금부터 단 30분이라면, 나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하고 싶은가?


당연히 가족부터 떠올린다. 비현실적인 소망도 가능하다면 하늘을 나는 융단을 타고 지방에 사는 내 친정 부모님, 동생들 가족. 내 피붙이들의 얼굴을 스치듯이라도 보고 오고 있다. 만약 현실 가능한 것만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마음이 더 급하다. 나 없이 남아있을 남편과 딸에게 전해줄 말이 많다. 결국은 잔소리가 되겠지만.

 

그럼, 내게 주어진 오늘은 군가가 살지 못한 내일이다. 그런 소중한 하루가 내게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이 하루를 살 수 있는가? 모든 욕심 내려놓고 가장 우선순위로 이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월요일 아침, 나는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깨끗하게 와이셔츠 4장을 다려놓았다. 그리고 평소 주던 우유 한잔을 오늘은 건강에 좋다는 당근 주스로 바꿔 주었다. 

딸을 위해서는 한 끼라도 더 내 손으로 밥을 주고 싶다. 왜 밥일까? 제왕절개 응급수술로 그 아이를 낳은 후 나는 통증으로 몸부림치며 아이에게 이틀간 젖을 물리지 못했다. 당장 내 몸이 아파 죽을 지경이라 제발 신생아실에서 분유라도 먹여주겠지 하고 산모실로 데려오는 아이를 자꾸 돌려보냈었다. 그런데 사흘째 아침, 아기가 너무 울어서 안된다며 또 산모실로 데려왔다. 자기네 병원은 모유수유 권장병원이라 웬만하면 분유를 안 준다는 것이다. 그 소릴 왜 이제야 하는지 어처구니없어하며 힘들게 젖을 물렸다. 배곯이가 심했는지 아이는 수유를 하고도 양이 부족해 분유를 정신없이 먹어댔다. 그때의 미안함이 내 안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인지 나는 딸에게 한 끼라도 더 내손으로 줄 수 있다면 주고 싶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나는?

생각 보다 나는 꽤나 헌신적인 사람인가 보다. 남편과 아이를 떠올리고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나니 왠지 할 일을 다 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서도 오늘을 살아보라고 한다면? 평소 내 삶에서 가장 부족했던 것! 

바로 감사다. 오늘을 경험하며 순간을 느끼고 감사해 보는 것. 

당장, 지금처럼 모래시계와 30분의 사색. 하며 시작하는 이 아침의 여유. 오늘 또 하루 주어진 생의 시간을 감사로이 보내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방법인 것 같다. 오늘을 내가 감사하며 살아낸다면 설령 내일을 맞이하지 못하더라도 억울할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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