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근처에 산행할 수 있는 장소가 있대. 너 오늘 어디 안 가면 엄마랑 같이 산에 갈래?”
모처럼 집에서 쉬고 있는 일요일. 엄마가 말을 꺼내셨다. 나는 동네에 경치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에 흔쾌히 산에 오르기로 했다. 도심 속에 산이 숨어있다니. 무언가 새로운 비밀 장소를 발견해 낸 것 같아 설렜다.
지난 추위를 잊은 듯이 바람은 따뜻했고, 하늘은 온통 푸른색이었다. 기다랗게 솟은 나무 사이에서 작은 열매들이 후드둑, 후드둑 떨어져 내렸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갖가지 울음을 토했다. 초여름의 산 아래 완만하게 이어진 산길을 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또 걸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조금 힘들면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행복을 찾아 나선 또 다른 우리가 되어. 엄마와 나는 도심 속 작은 산을 비밀장소로 정하기로 했다. 일상이 지칠 때, 가끔 몸과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장소로 정하자고. 행복이란 건, 이렇게 작은 것들 속에서 온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우리는 매일을 만났고, 매일을 걸었다. 동네 골목을 산책 코스로 정해 걸었다. 따뜻한 그의 손을 잡고 밤길을 걷는 게 좋아, 일에 지친 날 밤에도 내가 먼저 걷자고 이야기했다. 아무도 없이 홀로 걷던 밤길들. 달을 벗 삼아 걷고 또 걸었던 숱한 밤의 날들. 내 곁을 누군가 함께 해주는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더 이상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나를 바라봐 주면서 함께 걸어 주었으니까.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세상을 다 가진 것과 같은 행복이었다.
정상까지 채 오르지 못하고 엄마와 나는 산을 내려왔다. 산속을 벗어나니 바로 헤어진 남자 친구의 집이 보였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산이 있다니. 헤어지기 전, 단 한 번이라도 함께 산행을 했으면 좋았을 걸. 싶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그럼 제일 먼저 함께 산을 오르자는 이야기를 건넬 것 같은데.
앞서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조금은 지친 표정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손으로 닦고 계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마는 환한 미소를 보냈다.
누군가는 지난 계절처럼 지나갔다. 누군가는... 사계절이 되어 내 곁에 머물러 있다. 다시 홀로가 되어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일상 속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일상은 지침도 없이 늘 사계절처럼 내 곁에 머물러 있다. 또 하나의 진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모든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