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멈추고 싶은 날, 그래도 다시 일어서는 이유
– 무너지는 순간마다 마음에 되뇌는 것들
아침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기상과 동시에 굳은 관절을 겨우 움직이며 일어났는데, 엄마는 어느새 소리 없이 서랍을 뒤적이고 있었다. 잠옷은 이미 흘러내렸고, 거실에서는 동생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문득,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간병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든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허락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쓰러지면, 누군가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언제나 나였다.
요즘 들어 감정 표현이 점점 서툴러진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얼굴로 하루를 버티고 나면, 그날의 감정은 어디론가 떠내려간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마음속 한구석에 말하지 못한 채 쌓여가는 먼지처럼 남아 있다. 처음엔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가벼웠지만, 이제는 눈을 감아도, 몸을 씻어도 따라붙는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고립된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순간은, 내가 ‘사람’이 아닌 ‘역할’처럼 느껴질 때다. 돌보는 손, 간호하는 손, 정리하는 손. 내 손끝에는 늘 누군가의 삶이 걸려 있는데, 정작 내 삶은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조차 어렵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던 어느 날, 평소처럼 성당으로 향했다. 기도도 흐릿했고, 묵상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기만 했다. 주님의 말씀도 마음을 울리지 않았고, 기도 중에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미사가 끝난 뒤, 앞줄에 앉았던 노년의 부부가 천천히 손을 잡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걸음은 느렸지만 단단했고, 무엇보다 무너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걸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내 삶을 걸어갈 수 있을까.’ 신앙은 내게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쌓여 있던 물음표들을 조용히 내려놓게 해준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희미한 쉼표 하나가 남는다. 그 쉼표 덕분에 나는 또 하루를 이어갈 수 있다.
나는 가끔 나 자신을 오해한다. ‘이만큼 견디고 있으니, 나도 괜찮은 거겠지.’ 하지만 그건 괜찮다는 증거가 아니라, 여전히 괜찮지 않다는 신호다. 내가 무너지지 않는 건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일어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따뜻하게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