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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치매 엄마와 말기암을 투병하는 남동생 돌봄일지

#12. 누가 나를 돌보아주나요?

by 햇살통통

–돌봄의 무게에 묻혀 있던 나를, 오늘은 주님의 품에 살며시 맡겼다.


엄마의 옷을 갈아입히던 순간,

갑자기 허리를 삐끗했다.

숨이 턱 막히고, 한순간 몸 전체가 굳어버렸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자세를 바꾸려 했지만, 고통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한 손은 엄마를 부축하고, 다른 손은 허리에 얹은 채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췄다.

아무도 몰랐을 그 짧은 정지의 시간 속에서

나는 묵묵히 아픔을 삼켰다.

그 순간, 문득 스쳐간 생각 하나.

“이럴 땐 누가 나를 돌보아줄까?”


돌봄은 늘 ‘나’에서 ‘타인’으로 향하는 일이다.

엄마의 식사를 챙기고, 동생의 약을 건네고,

그들의 상태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

나는 내 몸과 마음의 신호를 놓치기 일쑤였다.

언제부턴가 내 상태를 묻는 이도, 스스로 살피는 여유도 사라져 버렸다.



허리 통증을 안고 겨우겨우 오전 시간을 버텨낸 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엄마를 맡긴 후

느린 걸음으로 성당을 향했다.

오늘은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꼭 가고 싶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다 안아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미사 시간, 주님의 품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 중에 눈을 감으니

아무도 묻지 않아도,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내 안의 무거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하다.

“하느님, 제가 조금 힘듭니다.

오늘은 저를 조금만 더 안아주세요.”


신앙은 내게 큰 목소리로 위로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곁에 있어준다.

기도문을 따라 읊는 순간,

내 안에 굳어 있던 마음이 물처럼 풀린다.

누군가를 지켜내기 위해 애쓴 나 자신을

비로소 주님 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성당을 나서며 나는 다시 묵주를 쥔다.

여전히 허리는 아프고, 마음도 지쳤지만

기도 속에 맡겨둔 무언가 덕분인지

숨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집에 돌아와 또다시 일상은 이어진다.

하지만 아까의 나는 다르다.

주님의 시선 안에서, ‘돌보는 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걸

오늘 미사를 통해 다시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지켜야 할 이들보다

더 간절하게 지켜지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신앙은, 아무 말 없이 그 마음을 알아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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