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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치매 엄마와 말기암을 투병하는 남동생 돌봄일지

#14. 말기암이라는 이름 앞에서

by 햇살통통

–병명보다 먼저 보이는 사람의 얼굴, 나의 동생과 조카 이야기


‘말기암’이라는 단어는 차갑고 선명하다.

누구에게는 절망의 문이지만,

나에겐 동생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단지 암환자가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 누군가의 병실을 지켰던 사람이었다.

15~6여 년 전부터 셋째형의 간병을 도맡아,

형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곁을 지켰다.

그 시간은 무겁고 길었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돌봄은 그의 삶의 방식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런 그가, 이제는 스스로 병상에 누워 있다.

대장암 수술, 항암치료, 장루 제거수술,

간과 폐 전이로 인한 또 다른 수술,

최근에 재발된 간에 초음파 레이저 시술.

그리고 또 다시 항암치료.



어쩌면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병의 이름들.

하지만 그는 항상 말했다.

“그래도 감사해.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


그의 입에서 불평이나 원망은 나오지 않는다.

되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살핀다.

입원 중에도 지인들의 안부를 먼저 묻고,

수술 전에는 나보다 오히려 나를 다독인다.

어쩌면 그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자란 사람인지 모른다.


그런 그가 내 자리를 대신해

치매 엄마를 챙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가거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도 통증을 안고 있음에도

엄마의 식사를 챙기고 진료 동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투병은 단절이 아니라 여전히 ‘돌봄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서울에 사는 큰조카.

마흔 중반의, 한창 바쁠 시기지만

엄마의 생신, 병원 진료, 동생의 입원과 수술 때마다

말없이 부산으로 내려온다.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내가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없다는 걸

말없이 알아채고 조용히 와준다.


그 조카의 존재는

‘사람이 필요할 때 사람이 곁에 있어주는 일’이

얼마나 고맙고 따뜻한 일인지 알려준다.

그는 큰소리로 뭔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숨을 돌릴 수 있다.


병의 이름은 차갑고 명확하지만,

사람의 얼굴은 다르다.

그 안엔 묵묵함, 배려, 책임감, 애틋함,

그리고 말없이 건네는 사랑이 담겨 있다.


나는 동생과 조카를 보며 자주 다짐한다.

병이 사람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고통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 없다고.

말기암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보이는 건

늘 ‘그 사람 자체’라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들이 아파왔던 시간보다,

누군가를 챙기며 웃던 표정을

더 오래,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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