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고요한 돌봄, 고요한 사랑
– 마무리 에세이: 간병은 고요한 노동이자 끝없는 사랑의 연습
하루의 끝, 모두가 잠든 밤이면
나는 마치 오래된 책갈피를 넘기듯 오늘을 다시 펼쳐본다.
치매에 걸린 엄마와 투병 중인 동생,
그 곁에서 살아낸 시간들을.
누구에게도 설명되지 않는 하루가 있다.
말로 풀 수 없는 수고가 있고,
오직 눈빛과 손끝으로만 전해지는 감정이 있다.
간병은 그런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아니, 견딘다기보다는 묵묵히 함께 서 있는 일이다.
처음엔 매 순간이 두려웠다.
내가 이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걸까.
그러다 문득, 그 질문에 답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필요한 자리에 있고,
누군가를 바라보고, 안아주고, 기다리는 일.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기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간절히 돌본다는 것은
결국 나를 조금씩 비워내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 비워짐이 괴롭기보다,
때로는 따뜻하고 평화롭기까지 하다는 것도.
아마 그건 내가 사랑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리라.
엄마의 헛걸음에도,
동생의 깊은 통증 앞에서도
나는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곁에 있으려 했고,
그 곁에서 나도 함께 늙어가고, 약해졌다.
돌봄은 거창하지 않았다.
씻기고, 먹이고, 약을 챙기고,
걱정과 안심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하는 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시간은 분명 누군가의 생을 지탱했다.
나는 오늘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은 지쳐 눈물 나고,
어느 날은 작은 미소 하나에도 살아 있음을 느끼며.
그 모든 날들이 모여 내 안에 사랑의 근육을 키워줬다.
조금씩, 천천히, 깊어지며.
고요한 돌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챙기는 사람’만은 아니다.
이제는 나도 돌봄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다.
삶의 끝자락에 다가가는 이들과 함께,
나는 오늘도 사랑을 연습하고 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이었음에도 끝까지 읽어 주시고 마음을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작은 기록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충분히 채워집니다.
읽어주신 마음 하나하나가 저에겐 큰 응원이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삶의 순간들을 소박하게나마 나누며,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