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간병인의 하루는 왜 끝나지 않을까
– 돌봄의 시간은 멈추지 않지만, 그 안에도 작고 조용한 희망이 있습니다.
창밖은 환한데, 내 안은 늘 밤처럼 어둡다.
햇빛이 비추는 창문을 바라보며 나는 종종 혼란을 느낀다.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조차 흐릿해진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건, 벽시계 초침 소리로만 확인할 뿐이다.
하루가 분명히 시작되었지만, 이 하루는 도무지 끝날 줄 모른다.
누구도 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누구도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돌봄은 조용하고, 외롭고, 때로는 잔인할 만큼 반복된다.
가끔은, 창문 밖 세상이 낯설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커피를 마시고, 웃는 소리를 들으면
그 풍경이 마치 다른 행성 같다.
나는 그곳에서 멀어졌고,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동생을 함께 돌보는 일은
몸이 아닌 ‘삶 전체’를 내어주는 일이다.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갤 수 없고, 나를 위한 틈을 만들 수도 없다.
그들의 생체리듬에 내 삶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림자처럼 존재하게 된다.
하루에 몇 번이고 마음속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죄책감과 무력감, 책임감과 사랑 사이에서 매번 엉켜버린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는 침묵한다.
말하면 울 것 같아서.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누군가를 끝까지 지킨다는 건, 자기 자신도 끝까지 견디는 일이다.”
나는 지금 그 ‘견디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은 다 무너질 것 같다가도,
또 어느 날은 내가 누군가의 버팀목이라는 이유로 하루를 통과한다.
어떤 날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는 조용히 잠만 자고, 동생은 말없이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그 평온한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조용히 식탁을 정리하고, 수건을 접으며
마음속으로만 되뇐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는 왜 끝나지 않을까.
끝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살아남는다.
시간이 멈췄다면, 이 모든 수고가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계속 흐르기 때문에,
오늘도 살아야 할 이유가 남는다.
내일을 위한 이유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