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엄마의 낮, 나의 밤
– 낮과 밤이 뒤바뀐 하루 속, 웃음과 눈물로 버티는 시간.
치매를 앓는 엄마는 요즘 낮과 밤이 뒤바뀐 채 사신다.
낮동안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잠에 빠져들고, 모두가 잠든 한 밤중 이면 눈을 반짝 이신다.
엄마의 낮이 깊어질수록 나의 밤도 함께 무너진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 깨고, 엄마의 낯선 발걸음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하루를 따라 사는 것 같다.
낮 동안 차곡차곡 쌓인 엄마의 감정은 밤이 되면 어디론가 터져 나온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익숙한 노랫가락이 무한 반복된다.
어릴 적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이제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흥얼거리고, 지휘하고, 지시한다.
이불을 보따리 삼아 짐을 꾸리고, 어딘가 가야 한다며 문을 나서려는 엄마를 나는 매번 붙잡아 앉힌다.
하지만 억지로 말릴 수는 없다.
잠시 그대로 두어야 한다. 다 하고 지치기를, 무사히 끝내기를 기다린다.
그렇지 않으면 대성통곡이 따라온다.
그 울음 앞에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나도
관절마다 통증이 도사리고 있고, 밤이면 손가락과 무릎이 욱신거린다.
그런 몸으로 엄마의 움직임에 대비해 침대 밑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잔다.
엄마가 일어나면, 나도 바로 일어난다.
힘없어 보이는 분이 막상 움직일 땐 웬만한 성인 남성 못지않은 기세다.
“어디 가시려고요, 엄마.”
몸으로 막아도, 마음으론 매번 따라잡지 못한다.
이 모든 시간이 너무 고단하지만, 아주 가끔은 웃음이 나온다.
‘참, 엄마답다.’
마치 인생의 맨 처음과 끝을 한 사람 안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다.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과,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가려는 힘.
엄마는 분명히 퇴행 중인데, 그 속에서 나는 함께 늙어가고 있다.
엄마의 낮은 분주하고 예민하고,
그 낮의 끝에서 나의 밤은 무너지고 다시 시작된다.
하루하루, 웃음과 눈물 사이에서.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시간도 언젠가 끝이 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엄마와 함께 늙어가는 나를 조용히 끌어안는다.
이 밤을, 이 생을, 견디고 있는 나 자신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