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구옥 Oct 14. 2022

구옥살이 8일 차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은 욕실과 베란다로

이틀을 내리 앓고 좀 살만해지자마자 데크 타일과 샤워 커튼이 도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차일피일 계속 미루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작업을 시작했다.


아무리 물기를 그때그때  제거하면서 최대한 반건식으로 사용하려 한다고 한들... 목재와 습기가 좋은 궁합일 리 없다. 그 탓에 이 날은 편백 소재의 데크 타일에 바니쉬를 바르고 말리고 덧바르는 작업으로 하루를 거의 보내게 되었다.


혹여 바니쉬 때문에 편백 향이 덮이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완전히 건조되고 나니 바니쉬의 냄새가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완전히 무취까지는 아니었지만 '새것 냄새' 정도의 표현으로 퉁칠 수 있는 수준이랄까.


도 닦는 기분으로

무념무 같은 행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는 뭘 해야 하는지 순서를 정리하면서 내 행동으로 인한 변화와 보상을 실시간으로 체감하는 것부터 정신건강에 매우 이로운 느낌이었고. 그런 생각조차 멈추고 '지금 하고 있는 동작'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부터는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때에는 몰랐던 색다른 집중의 쾌감이었다.


아침에 시작한 일이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을 때. 살면서 아, 공부하기 싫다-라거나 아, 일하기 싫다 따위의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었는데 지금처럼 '벌려놨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야만 한다'는 각오로 덤빈 경험은 처음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제법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구나... 따위의 때 지난 자아성찰과 함께 수없이 반복되었던 사포질과 붓질이 모두 끝났다.



바닥 before / after


방수 작업이 고되었을 뿐이지 데크 타일을 설치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데크 타일 주문을 위해 이미 사이즈를 재 두었고, 남는 부분에는 백자갈을 채워 메꿀 심산이었기에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다.


밑준비에 하루 꼬박, 설치에 15분.

이제는 너무 쉽게 끝나면 조금 허망해지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커튼봉에 샤워 커튼을 끼워서 수평을 맞추어 고정하고 나니 구질구질하던 욕실이 제법 그럴싸하게 보였다. 내친김에 싱크대를 리폼하고 남은 라인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지난번의 싱크대 리폼 과정을 통해 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금색 테이프가 모서리가 꽤나 큰 변화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세월에 낡아 갈색으로 변한 거울의 네 면과, 수납장의 테두리에 메탈 느낌의 금색 라인을 둘러주니 조금 더 깔끔해졌다.


바닥도, 샤워 커튼도, 거울도 달라졌는데 이상하게 뭐가 심심한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너무 흰색 일색이라 편집증 환자네 집 같다는 동생의 조언을 수용하여 샤워 커튼을 키치한 디자인으로 준비했더니, 걔만 동동 뜨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한참이나 팔짱을 끼고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베란다에 쓰려고 아껴두었던 알전구를 욕실 거울에 붙여주기로 했다. 거울에 전구를 붙일 때만 해도 별로인가? 싶었는데 알전구에 불을 켜는 순간 이거다! 싶더라고.




욕실에 설치하고 남은 데크 타일 베란다 한쪽 구석에 깔았다. 베란다는 데크 타일을 깐 쪽에 경량 랙을 설치해서 분리수거 상자와 쓰레기통 등을 두기로 했다. 한참 베란다에서 고무망치를 두드리고 있을 때에 타일 카펫이 도착해서 욕실에 이어 베란다 바닥까지 순식간에 변신!


베란다는 홈카페 겸 홈바로, 기분 좋은 상태에서 기분 좋은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꾸밀 생각이었다. 배 깔고 엎드려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소리.

서늘하던 타일 위를 타일 카펫으로 덮으니 큰 노력 없이도 베란다가 한결 편안판 무드가 되었다. 아마도 제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될 곳이 되겠구나, 싶어 지던 순간이기도 했고.


후줄근하던 바닥이 내가 원하는 이미지대로 변하는 것을 보니 더없이 뿌듯해졌다. 노력만큼의 변화와 보상이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맛은 아주 중독적이었다.


욕실과 베란다에 이렇게 데크 타일과 타일 카펫을 깔아 두니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관리가 한층 용이해졌다. 욕실은 사용 직후에 물청소기로 수분을 쫙 빨아들인 뒤에 제습기를 돌려서 최대한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 있다. 그렇게 밤새 물기가 완전히 마르게 두고 날이 밝으면 집 전체 청소기를 돌리는 식으로 관리 중이다.


거실, 방, 욕실, 테라스까지 청소기 슥슥 밀고 다니는 즐거움이란 :)



:: 8일 차 장비 ::

청소용품 : 화장실 및 주방용 거품 세정제

생활용품 : 편백오일, 제습기

생존용품 : 몸살감기약 보충



:: 8일 차 교훈 ::

집중의 힘


이전 06화 구옥살이 6일-7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