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구옥 Oct 14. 2022

구옥살이 6일-7일 차

욕실과의 한판 승부

어느덧 이 집에 눌러살게 된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미루고 미루었던 욕실과 싸워 볼 차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욕실을 본가에서 쓰던 것처럼 반건식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구조상 샤워부스를 설치하면 문을 열었을 때에 답답해 보일 것 같고, 욕조를 넣자니 또 뭔가 애매한 느낌이라서 큰 공사 대신 소소한 보수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어디를 어떻게 보수해야 할까 꼼꼼히 살펴보니 욕실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았다. 이게 까마득한 과거인 것만 같은 첫날에 구역질을 해가며 청소해 둔 덕인지, 아니면 다른 온갖 더러운 곳들을 보다 보니 이 정도는 괜찮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걱정했던 것보다는 꽤 괜찮아 보였다. 


줄눈 마카로 슥슥


줄눈 작업은 순식간에 끝났다. 요즘 셀프 보수하기 좋은 제품들이 정말 많더라고.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고, 전후 차이가 한눈에 극명히 보여서 수고하는 보람도 컸다. 줄눈을 새로 바를 필요 없이 튼튼한데, 세월 때문에 누렇게 변색해서 꼴 보기 싫은 부분에는 줄눈 마카를 발라 하얗게 칠해주었다. 

큰 기대 하지 않았던 줄눈 마카가 의외의 대활약을 해주어서 타일 줄눈만 새로 칠했는데도 욕실이 한층 환해졌다. 



before / after


신나게 줄눈을 칠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칠하고 나니 줄눈만 환해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싶길래 주방 타일을 칠해주고 남은 타일 페인트를 다시 꺼내 들었다. 

타일 페인트의 밀착력과 유지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표면이 완전 바싹 말라있어야 하고, 타일 표면에 이물질이 없어야 한다. 페인트칠을 하기 전에도, 페인트칠을 한 뒤에도 정말로 물기 하나 없는 상태여야 한다는 부분에 별표를 열 개쯤 치면서 강조하고 싶은 마음.


작은 타일이 청색과 회색으로 얼룩덜룩해서 과연 타일 페인트를 칠한다고 가려질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두세 번 정도 덧칠을 거치자 잡티 하나 없는 백색이 되었다. 





전날 주문했던 데크 타일과 샤워 커튼 등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날은 새로 구입한 수건들을 개어 넣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대충 정리하고 쉬어야겠다면서 자리에 누웠던 나는 그다음 날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처음에 비해서 사람 사는 집같이 되었다는 안도 때문인지,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끙끙 앓기 시작했던 것. 


물론 웨인스코팅을 마친 날도 앓아눕기는 했지만... 이렇게 열이 나고 온 몸에 근육통이 몰아치는 몸살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혼자 앓으면 서럽다던데 그런 서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아프기만 하는 경험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혹시나 전 세계를 강타한 그 전염병인가 싶어 일전에 상비약을 준비하면서 같이 구입해 둔 자가 키트로 눈물이 핑 돌도록 깊이 찔러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음성. 

그러니 이 열과, 이 근육통은 오롯이 이놈의 구옥 때문인 게 확실했다. 

솔직히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운동과 담쌓고 살았던 손가락 노동자가 택배박스를 매트 삼아, 에어캡을 이불 삼아 중노동을 이어갔으니 아프고도 남지.


어차피 뭘 더 할 수도 없는 컨디션이 되었으니 주말에는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푹 쉬면서 체력을 충전한 뒤에 다가오는 월요일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성경에서 하나님도 6일 일하고 하루는 쉬었다잖아. 




:: 6일 차 장비 :: 

청소용품 : 거품형 화장실 클리너, 줄눈 보수제, 줄눈 마카, 물 흡입 청소기

생활용품 : 목재 방수 바니쉬, 실란트 픽스

생존용품 : 해열 패치



:: 6일 차 교훈 :: 

내 체력을 과신하지 말자

실란트 픽스로 고정한 곳은 마스킹 테이프로 고정해두자


이전 05화 구옥살이 5일 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