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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옥 Oct 13. 2022

구옥살이 5일 차

조명과 수전 교체

5일 차는 조금 여유 있게 느지막이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졌거든. 

현관 매립등을 직부등으로 바꾸고, 형광등을 LED 등으로 교체하고, 화장실 조명도 LED 방수 등으로 교체하면 될 것 같았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청소하러 왔다가 집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끝없는 육체노동의 굴레에 빠져 있지만... 본디 나는 주체적 위치 변화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방의 LED 등은 리모컨으로 켜고 끌 수 있는 제품으로 구입했다. 원래는 스마트 스위치를 설치할까 생각했는데, 그 툭 튀어나온 모양새가 1차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리모컨으로 전원을 조작할 수 있는 LED 등의 가격이 스위치보다 훨씬 저렴하더라고.




현관 매립등을 직부등으로 교체



평생 문과 외길을 걸어왔기에 내가 감히 전기를... 하는 마음에 망설였으나 막상 덤비고 보니 설치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두꺼비집을 내리고, 전기작업용 목장갑을 끼고, 원래 있던 등을 떼어내고, 전선을 연결한 뒤에 새 등을 설치하면 끝이었다. 

전선 연결도 스위치 같은 것에 끼워넣기만 하면 되어서 정말 순식간에 끝났음. 물론 이렇게 쉽게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큰 팔척장신 2호 남자 친구의 덕이 컸다. 



주황색 형광등을 주광색 LED등으로 교체




전에 사시던 분은 대체 이 주황색 불로 어떻게 생활을 하셨을까, 아니 대체 왜 형광등인데 주황색일까. 정말 볼 때마다 매일 궁금했을 정도로 네온사인 같은 주황색이던 구린 조명을 다 제거하고 밝은 주광색으로 다 갈아 끼우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요즘 트렌드는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의 주백색이라지만 나는 두 번 고민하지도 않고 쿨한 화이트 취향이었다. 어차피 이 집은 작업실을 겸해 일에 주력해서 쓸 예정이었으므로 '일을 해라' 하는 은근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조명이 필요했기도 하고.


톱질하고, 풀칠하고, 감싸고, 바르는 격렬한 일들을 끝내고 보니 이런 일이 크게 어렵지 않게 느껴지길래 인간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새삼 실감했다. 

다 좋았는데, 단 한 가지 문제는 페인트 칠을 할 때에 기존 전등도 분리하고 했어야 했다는 점 정도. 

구식 형광등에 비해 LED 등이 부피가 훨씬 작다 보니 기존 등을 제거하고 재설치하자 페인트칠을 하지 못한 원래 등의 흔적이 남았다. 별 수 있나. 덧발라야지.


쿨한 척 덧바르긴 했는데, 덧바른 부분이 계속 눈에 걸리길래 한동안 천장 쪽은 쳐다보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하면서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수전 교체 및 필터 설치로.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싱크대 수전. 전에 살던 분은 정말 이걸로 설거지를 하고, 그 식기로 밥을 먹은 걸까 



이때에는 전에 살던 분이 샤워 수전도 주방 수전도 말도 못 하게 더럽게 쓰고, 그대로 두고 갔기 때문에 교체했을 뿐이었다. 온 집이 하얀색이니 수전도 흰색으로 교체하고 싶다는 게 더 솔직한 마음이었고. 



수전 교체(좌) / 설치 직후부터 노랗게 변하는 필터(우)




하지만 쓰면 쓸수록, 살면 살수록 지은 지 오래된 구옥의 최대 단점은 배관임을 체감하면서 이날의 필터 설치가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전에 살던 본가에서 비슷한 필터를 사용할 때엔 두세 달 정도 써야 좀 노래졌나, 싶게 필터 색이 변하는 느낌이었는데 이 집에선 설치한 다음 날부터 필터가 옅은 노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필터가 걸러주는 거겠지, 생각하면서도 물을 쓸 때마다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가 어렵다.

다른 부분은 어떻게든 고친다 쳐도 이런 노후한 배관 문제는 딱히 답이 없어서 더 찜찜한 느낌.



세면대 수전과 탭 교체(왼쪽 두 장) / 교체 후(오른쪽)



세면대 수전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 며칠간 왠지 양치만큼은 생수로 하고 싶더라니... 





샤워기 헤드는 사진을 올리지 못할 정도로 더러워서 통째로 절수형으로 교체했는데, 이건 구옥에선 사용 금지 아이템이라는 걸 조금 나중에 알았다. 

구옥 배관 특성상 샤워를 하면서 절수 버튼을 누르면 옆집으로 역류를 한다면서 관리사무소 직원분이 집까지 친히 찾아와서 샤워기를 체크하고, 절수 버튼 쓰지 말라며 경고하고 가셨다. 수도 계량기에서 확 차이가 난다나. 


아무튼.

행복하게 마무리하려던 하루의 끝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지난달에 미리 주문을 넣어두었던 침대 프레임의 배송이 원래 일정에서 한 달 정도 지연된다고. 

내가 나무를 깎아서, 사포질을 해서, 못질을 해서 침대를 만들어도 한 달은 안 걸리겠다고 투덜거리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가 긴급 구호 물자라며 이불을 전달해주어서 이 집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게 되었다.


경악스러웠던 처음 모습이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변한 집에 누워 내일은 뭘 할지 생각해보았다. 

이제 급한 불은 대충 껐으니 욕실을 꾸미기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 5일 차 장비 :: 

청소용품 : 청소포, 밀대

생활용품 : 건전지 AA, AAA 사이즈 한 박스

생존용품 : 육각렌치



:: 4일 차 교훈 :: 

필터의 소중함

혼자 살수록 위생 관리에 신경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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